소양왕

소양왕

[ 昭襄王 ]

요약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의 제28대 군주(재위 BC 306~BC 251). 주변국을 복속시키고 영토를 확장해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
출생-사망 BC 325 ~ BC 251
국적/왕조 중국 진(秦)나라
재위기간 BC 306년~BC 251년
시대 동주 시대(전국시대)
별칭 소왕(昭王)
활동분야 정치

성은 영(嬴), 이름(名)은 칙(則)이며, 직(稷)이라고도 한다. 시호는 소양왕(昭襄王)이며, 소왕(昭王)이라고도 부른다. 진(秦)나라의 제26대 군주인 (惠文王)의 아들이며, 제27대 (武王)의 이복동생이다. 어머니는 초나라 출신인 선태후(宣太后) 미씨(羋氏)이다.

소양왕은 기원전 307년 무왕이 갑작스럽게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힘겨루기를 좋아했던 무왕은 역사(力士)인 맹열(孟說)과 청동으로 된 큰 솥을 들다가 정강이뼈가 부러져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22살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무왕에게 아들이 없었으므로 당시 연(燕)나라에 인질로 가 있던 이복동생 소양왕이 왕위를 잇게 되었다.

무왕에서 소양왕으로의 왕위 계승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따라서 소양왕은 재위 초기에 왕실 내부의 반발을 억누르고 왕권을 확립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했다. 기원전 305년에는 서장(庶長) 장(壯)의 모반에 연루된 대신과 제후들을 모두 처형했다. 이때 혜문왕의 왕비인 혜문후(惠文后)도 목숨을 잃었고, 무왕의 왕비인 도무왕후(悼武王后)는 위나라로 돌아갔다. 기원전 301년에는 형제인 촉후(蜀侯) 휘(煇)가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착(司馬錯)을 보내 이를 평정했다.

소양왕은 56년 동안이나 왕위에 있었는데, 그 동안 위염(魏冉)과 백기(白起) 등을 등용해 진나라를 크게 부강케 하였다. 주나라를 멸망시켰고, 초(楚)·위(魏)·한(韓)·조(趙) 등의 국가를 정벌해 동쪽으로 영토를 크게 넓혀서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 기초를 닦았다. 기원전 288년에는 제나라 민왕(閔王)과 함께 각각 서제(西帝)와 동제(東帝)라 칭하기도 했다.

소양왕은 점령지역에 군(郡)·현(縣)을 설치하고 죄수들을 사면해 이주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진나라의 영토 확장에 나섰다. 기원전 286년에는 죄수들을 사면해 하동(河東)으로 이주시켰고 이듬해 9개의 현을 설치했다. 기원전 279년에는 초나라의 언(鄢)과 등(鄧)을 점령하고 죄수들을 이주시켰다. 기원전 278년에는 초나라의 도성인 영(郢)을 점령해 그곳에 남군(南郡)을 설치했고, 기원전 277년에는 초나라의 무군(巫郡)과 강남(江南)을 점령해 그곳에 검중군(黔中郡)을 설치했다.

초나라의 서쪽 영토 대부분을 빼앗은 소양왕은 뒤이어 위나라와 한나라, 조나라 정벌에 나섰다. 기원전 264년에는 한나라를 공격해 9개의 성을 점령했고, 기원전 262년에도 한나라의 성 10개를 빼앗았다. 기원전 259년에는 조나라를 공격해 피뢰(皮牢)를 점령했고, 한나라를 공격해 태원(太原)을 평정하고 상당 지역을 모두 빼앗았다. 기원전 257년에는 장당(張唐)으로 하여금 위나라를 공격하게 해서 영신중(寧新中)을 점령해 그곳의 명칭을 안양(安陽)으로 고쳤고, 황허(黃河)에 처음으로 다리를 놓았다.

기원전 256년에는 장군 규(摎)를 보내 한나라의 양성(陽城)과 부서(負黍) 지역을 빼앗았고, 조나라를 공격해 20여 개의 현을 점령했다. 당시 주나라 왕실은 하남(河南)과 공(鞏) 지역에 분봉되어 세워진 서주국(西周國)과 동주국(東周國)이 서로 대립하고 있었는데, 주나라의 제37대 (赧王)은 서주국의 무공(武公)에 의존해 왕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서주국의 무공은 한나라, 조나라 등과 연합해 이궐(伊闕)로 군사를 보내 진나라가 양성으로 가는 길을 막았다. 소양왕은 서주국을 공격했고, 무공은 서주국의 36개 읍과 주민을 넘기며 항복했다. 서주국의 영토가 진나라로 병합된 이 해에 주나라의 마지막 왕인 난왕도 죽으면서 결국 주나라는 멸망했다. 소양왕은 이듬해에 주나라 왕권을 상징하는 보물인 구정(九鼎)을 진나라로 가져왔다. 주나라를 멸망시키고 왕권을 상징하는 구정까지 차지한 소양왕은 기원전 253년 진나라 최초의 도성이었던 옹성(雍城)에서 상제(上帝)에게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을 복속시켜 군림하려 했으나 기원전 251년 가을에 죽었다.

소양왕이 죽은 뒤에는 태자인 주(柱)가 (孝文王)으로 즉위했다. 하지만 당시 나이가 53세였던 효문왕은 왕위에 오른 지 3일 만에 죽었고, 효문왕의 아들인 (秦莊襄王)이 32세의 나이로 다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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