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설버트

애설버트

[ Æthelbert ]

요약 잉글랜드 앵글로색슨시대의 웨식스 왕(재위 860-865).
출생-사망 ? ~ 865?
국적/왕조 잉글랜드/웨식스
재위기간 860년~865년
시대 앵글로색슨시대
별칭 애설버트 웨식스(Æthelberht of Wessex)
활동분야 정치

잉글랜드 웨식스 왕가 출신의 왕이다. 애설버트(Æthelberht)는 고대 영어로 ‘고귀하고 빛나는 자’라는 뜻으로 앵글로색슨시대 왕족 이름으로 즐겨 사용되었다. 동명의 왕들과 구분하기 위해 웨식스의 애설버트(Æthelberht of Wessex)라 칭하기도 한다.

애설버트는 (Æthelwulf) 왕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웨식스의 고관(高官)의 딸 오스부르흐(Osburh)이다. 애설스텐(Æthelstan of Kent, ?~852), (Æthelbald), 애설레드(Æthelred), 대왕(Alfred the Great)과 형제지간이고 누이 애설스위스(Æthelswith)는 의 왕비였다. 애설버트의 왕비와 후사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부왕 애설울프는 852년 큰 아들을 잃었다. 이에 그는 855년 로마로 성지순례를 떠나며 둘째 아들 애설볼드에게 웨식스 본국에 대한 통치를 맡기고, 셋째 아들 애설버트에게는 켄트와 그 외 동부지방 에식스(Essex), 서리(Surrey), 서식스(Sussex) 등에 대한 지배를 일임했다. 856년 형 애설볼드는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반대파와 모의해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반대파와의 협상으로 애설울프는 계속해서 켄트와 왕국 동부지방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였고, 애설버트도 그 기간 동안 아버지 애설울프 아래서 2인자로 지냈다. 858년 애설울프가 죽은 뒤에도 애설버트는 계속해서 부왕(sub-king)으로 켄트와 동부지방을 통치하며 형 애설볼드와도 크게 충돌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860년 애설볼드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자 애설버트가 웨식스 왕위를 계승하고 왕국 전체를 통합했다.

애설버트 통치 기간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의 침입이다. 《알프레드대왕전기(Life of King Alfred)》에 따르면, 애설버트가 왕위에 오른 바로 그 해 바이킹들은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잉글랜드 남부해안을 침입했고, 곧바로 웨식스 왕국의 중심 도시였던 윈체스터까지 들이닥쳤다. 이때 햄프셔(Hampshire)의 오스릭(Osric)와 버그셔(Berkshire)의 애설울프가 약탈품을 가득 싣고 돌아가는 그들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다고 한다. 애설버트 재위 말인 865년에도 데인 족 바이킹들은 켄트 북동부 새넛(thanet) 섬을 침략했다. 그들은 켄트 주민과 협상하여 돈을 받고 물러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결국 금액이 적은 것을 문제 삼아 한밤중에 약탈을 자행하고 켄트 동부 해안을 짓밟았다. 두 차례 바이킹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애설버트 치세기에 대한 중세 연대기작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이다 그들은 애설버트가 통치한 5년간 잉글랜드는 평화롭고 질서가 잘 잡힌 시대였다고 평가했다.
 
애설버트는 865년(866년으로 보기도 함)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형이자 선대왕이었던 애설볼드와 나란히 셔본(Sherborne)에 매장되었다. 애설버트도 자식을 남기지 않고 죽었기 때문에 왕위는 동생인 애설레드가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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