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평화

[ 平和 , peace ]

에서 ‘평화’란 단순히 이나 이 없는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과의 관계성이라는 의 본질적인 문제와 더불어 그 존재의 과 결부된 론적인 문제까지도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매우 적극적인 의미의 단어다. 이 평화는 하나님과의 를 로 하고 그 화해는 의 적 사역에 의해서 이뤄진다(엡 2:15-16). ‘’, ‘’, ‘’ 등으로도 표기된다. 이에 해당하는 는 ‘솰롬’이며, 는 ‘에이레네’인데, 두 단어 모두 평온한 상태, 안전함(안녕), 조화와 일치, , 만족한 상태 등의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구약성경에서의 평화

‘솰롬’은 무엇인가 결여되거나 손상되어 있지 않는 건전()하고 충족(충만)한 상태를 말한다. 이 단어는 의 안부를 묻는 말로부터(창 29:6; 43:27; 삼하 18:29), 아무런 이 없는 상태(창 15:15; 26:29; 출 18:23; 시 4:8), 분쟁과 시비가 없는 화목한 상태(창 13:8; 시 133:1), 을 종식하는 화친(수 9:15; 왕상 20:18), 건강이나 (시 38:3), 삶에 있어서 (잠 3:2), 함(시 73:3) 등 생활의 모든 에 걸쳐 참으로 건강하고 스러운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즉, 단순히 적 이나 정신적인 안정 상태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에서 구체성을 띠는 복된 상태를 나타낸 개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평화는 온 모든 을 주관하시는 의 역사에 하는(사 45:7; 57:19), 하나님의 선물(은사)이다(레 29:6; 시 29:11; 122:6). 물론 은 이런 평화가 하나님과 인간의 바른 관계가 전제될 때만 가능하다고 가르친다(민 6:26; 25:12; 시 85:8; 사 26:3; 렘 16:5; 겔 34:25; 말 2:5). 하나님은 인간의 삶에 내재되어 있는 를 일소하심으로써 평화를 구현하신다. 따라서 평화와 의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이다(시 72:7; 사 32:17). 그리고 하나님이 이루실 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평화가 불가능하기에 평화와 구원 또한 동등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사 5:7).

한편, 구약성경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참된 평화는 불의하고 악한 이 땅의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과 의 역사에 의해서 론적으로 실현되는 구원으로서의 평화다(시 119:165-166; 사 53:5; 54:9-10). 그런 맥락에서 자들은 하나님께서 종말론적으로 이 땅에 이루실 평화롭고 복된 의 실현(사 11:1-9; 호 2:14-20; 암 9:13-15)과 모든 이 하나님께로 돌아옴으로 인해 이뤄질 온 세상의 평화(사 2:2-4), 그리고 를 실현하시고 구원을 완성하심으로써 평화를 가져오시는 의 도래(사 9:6-7; 슥 9:9-10)를 힘주어 선포하였다.

신약성경에서의 평화

‘에이레네’는 ‘솰롬’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분쟁()과 대립되는 개념으로서의 안녕(마 10:34; 눅 14:32; 행 12:20; 계 6:4)이나 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고전 14:33)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단지 정신적(영적) 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에이레네’란 당시 헬라 의 영향을 받아 분명 내면화되어 있는 개념이기는 하지만(롬 8:6; 15:13), 기본적으로는 ‘솰롬’의 개념을 그대로 이어 의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의미의 단어로 쓰이고 있다.

특히, 신약 들은 (당시 인들의 경우처럼)이 론적으로 대망하고 있던 ‘솰롬’ 곧 의 으로서의 참된 평화가 에 의해 실현된 것을 명확히 깨닫고 있다(눅 2:11, 14). 그리고 그러한 평화가 성도 개개인의 생활 속에서 그대로 확인되고 적용된다고 믿었다(마 5:9; 갈 5:22). 예수께서 이 땅에 가져온 것은 평화의 (요 14:27; 행 10:36; 엡 6:15)이요 참된 평화를 이루는 평화의 일 곧 의 길(눅 19:42; 롬 3:17)이다.

한편, 평화와 관련하여 신약성경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의 평화가 그분의 거룩한 을 통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죄로 인해 우리와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하시기 위해 친히 에 달려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고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의 적대관계에서 화평한 관계로 회복될 수 있었다(롬 5:1-11; 엡 2:14-17; 골 1:20). 이 같은 하나님과 우리의 평화의 관계에 기초하여 인간 상호간의 평화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마 5:9; 엡 2:18-19; 골 1:20; 히 10:19-24; 약 3:17-18).

한편, ‘에이레네’가 ‘솰롬’처럼 나 의 말로 사용되는 경우에도 그것은 단지 평화를 갈망하는 정도로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과 구원의 실현을 믿고 한다는 의미까지도 함축하고 있다(막 5:24; 요 20:19; 벧전 5:14; 약 2:16). 특히 은 헬라 문화권의 인사말인 ‘’(갈 6:16)나 ‘’(롬 1:7; 고전 1:3; 고후 1:2; 갈 1:3; 엡 1:2)와 상호 보완적인 용어로서 인들의 인사말인 ‘평화’를 함께 쓰고 있다.

그리고 당시 유대교의 전통적 나 축복의 경우처럼 하나님은 종종 ‘평화의 하나님’으로 일컬어지는데 그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로 인한 평화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롬 15:33; 빌 4:9; 살후 3:16; 히 13:20). 이처럼 구약과 마찬가지로 평화와 구원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사 9:6; 롬 5:1; 히 13:20-21). 실로, 그리스도 우리 구주 예수는 평화의 주시요 평강의 왕이시다(살후 3:16; 히 7:2).

신약 시대 성도들이 그 삶의 모든 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일(평화의 복음을 따라 사는 일) 또는 평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완성될 평화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성도로서의 마땅한 자세, 곧 종말론적인 신앙 자세다(롬 14:17-19; 고전 7:15; 골 3:15; 딤후 2:22; 히 12:14). → ‘’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