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

바다 위 궁전처럼 웅장함을 자랑하는 성산일출봉

바다 위 궁전처럼 웅장함을 자랑하는 성산일출봉

위도 33° 27′ 31″ N
경도 126° 56′ 23″ E

성산일출봉, 그 탄생의 비밀

푸른 바다 사이에 우뚝 솟은 성채와 같은 모양, 봉우리 정상에 있는 거대한 사발 모양의 분화구, 그리고 그 위에서 맞이하는 일출의 장관 때문에 성산일출봉은 많은 사람들의 감흥과 탄성을 자아낸다. 성산일출봉과 어우러진 경치는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일출봉의 탄생과 성장의 비밀을 알게 되면 지금까지 몰랐던 지질학적 가치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일출봉에 숨어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느 선현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성산일출봉

1963년 아이슬랜드 바닷가에서 일어난 화산분출

제주도에 있는 수많은 오름 중에서 그 모양과 멋이 가장 두드러진 일출봉에 대해 군계일학이란 표현이 적당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일출봉은 다른 오름과는 어떤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왜 생긴 것일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1963년의 아이슬랜드 바닷가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1963년 아이슬랜드의 남쪽 바닷가 한 곳에서 바닷물이 부글거리며 끓고 용암이 분출해서 화산섬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섬이 수면 가까이 성장하게 되자 용암 분출이 멈추고, 바닷물에 뒤섞인 검은 화산재와 물방울, 그리고 하얀 수증기가 거대한 분수와 같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이렇게 몇 달간 지속된 분출에 의해 만들어진 섬이 바로 섯시(Surtsey)화산이었다.

화산분출하면 높은 화산의 분화구에서 붉은 용암이 흘러나오고 뜨거운 화산재가 버섯구름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을 떠올리던 사람들에게, 바다 속에서 일어난 화산분출은 뜻밖의 일이었다. 전혀 다른 양상의 화산분출을 접한 사람들이 처음 인식하게 된 자연현상이 바로 수성화산 분출이다. 일출봉은 섯시화산과 같은 탄생의 비밀을 갖고 있다.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의 꼭대기 부분은 분화구의 일부분이며, 많은 부분이 깎여 나가 웅장한 성 모양을 이루고 있다.

마그마가 물을 만났을 때

제주도 대부분 지역은 온도가 1,200℃에 가까운 현무암질 마그마가 분출한 후 용암이 되어 흐르다가 식어서 만들어진 암석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뜨거운 마그마가 지표를 향해 올라오던 중 지하수를 만나거나, 바닷물이나 호숫물 또는 빙하와 같은 얼음을 만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마그마나 용암은 급히 식고 물은 끓게 되는데, 이런 냉각과 가열반응은 매우 격렬하게 일어나 큰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물이 풍부한 지역에 마그마가 관입한 것이 바로 1963년 아이슬랜드의 섯시화산과 일출봉을 만든 수성화산활동의 원인이다.

마그마나 용암이 물에 의해 급격히 냉각되며 산산이 부스러져 분출한 화산재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흑색 유리와 같다. 이렇게 수성화산활동에 의해 생긴 유리질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소규모 화산체를 ‘응회구’ 또는 ‘응회환’이라 한다. 제주도에 분포하는 대부분의 오름은 ‘분석구’인데, 이들은 구성 물질, 화산체의 크기와 형태가 응회환(응회구)과 다르다.

응회환은 분화구가 대체로 크고 깊으며, 분화구 주변의 화산재층이 작은 경사(15° 이내)와 낮은 높이(100m 이내), 그리고 넓은 분포를 갖는다. 반면 응회구는 분화구가 지면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하고, 화산재층이 큰 경사(30° 내외)와 높이(100m 이상)를 가지고 있다. 분화구의 바닥이 해발 90m에 있으며 높이가 180m에 이르고, 경사가 30°를 넘는 유리질의 화산재층으로 구성된 일출봉은 전형적인 응회구에 해당된다.

섯시형 화산폭발 모식도

섯시형 화산폭발 모식도

일출봉의 다양한 구조와 지층들

일출봉은 섯시형 화산의 다양한 구조들과 내부구조를 잘 보여주는 세계적인 화산체이다. 그 이유는, 일출봉이 형성된 후 수 천년 동안 바닷물이 화산재층을 깎아 침식절단면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 단면에는 일출봉의 탄생과 성장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는 다양한 구조들이 나타나 있다.

일출봉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구조는 황갈색 또는 짙은 회색의 응회암층들이 무수히 쌓여 만들어진 층리이다. 화산재가 화구 근처에 겹겹이 쌓이면 사면의 경사는 점점 가파르게 되는데, 이때 사면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 경사각에는 한계가 있다.

물질이 쌓이다가 어느 한계점에 이르면 더 이상 쌓이지 못하고 미끄러지거나 무너지게 되는데, 이러한 경사 각도를 안식각이라 한다. 자연 환경에서 가장 높은 안식각을 갖고 쌓을 수 있는 자갈도 안식각이 35°인데, 일출봉의 응회암 층들이 보여주는 경사는 최대 45°에 이르고 있다. 어떻게 일출봉의 화산재들은 안식각보다 훨씬 가파른 사면에 쌓일 수 있었을까?

그 원인은 일출봉의 화산재들이 분출할 당시 물기를 머금고 있어서 안식각보다 가파른 경사면에 쌓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싹 마른 모래로는 모래성을 쌓을 수 없지만 축축한 모래로는 여러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스쳐지나가며 보아 왔던 일출봉의 가파른 경사는 수성화산활동의 산물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미끄러진 응회층이 반복적으로 겹쳐져 만들어진 구조 (33°27′29.9″N/126°56′17.4″E)

미끄러진 응회층이 반복적으로 겹쳐져 만들어진 구조 (33°27′29.9″N/126°56′17.4″E) 밑에 있는 것일수록 길이가 길어지는 현상은 변위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미끄러진 개개의 층은 윗부분 것이 먼저 생기고 아랫부분의 것이 상대적으로 후에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일출봉의 화산재가 축축이 젖은 상태에서 쌓였다고는 하나 가파른 경사면에서는 불안정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파른 경사면에 쌓인 화산재층들이 가끔 무너져 화산체의 사면 아래쪽에 여러 개의 층들이 기왓장을 포개놓은 듯이 겹쳐진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런 구조는 사면에 놓여있던 응회층이 미끄러져 내려와 겹쳐지고, 다시 그 아래 부분이 미끄러져 내려 겹쳐지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발생할때 형성되며, 응회층이 한덩어리로 사면을 따라 미끄러질 수 있을 정도로 화산재가 충분한 끈기를 갖고 있어야 가능하다. 결국 일출봉의 화산재가 수성화산활동에 의해 축축하고 끈끈한 상태로 쌓였음을 지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섯시형 분출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 각 곳의 응회구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화산분출 물질을 화산재(volcanic ash)라고 부르지만, 화산재는 엄밀히 말해 모래와 같거나 모래보다 작은 크기(2mm 이하)의 입자들만을 일컫는다. 화산재보다는 크고 64mm 보다는 작은 입자는 화산력(lapillus)이라고 부른다. 일출봉의 화산력을 자세히 살펴보면 화산재가 수 mm 두께로 피복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떻게 해서 화산재가 화산력에 달라붙게 되었을까? 다량의 물이 마그마와 섞이면서 수성화산활동이 일어날 경우, 습기를 머금어 끈끈한 상태인 화산재는 콩알처럼 뭉치기도 하고 화산력의 표면에 달라붙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산력을 부가화산력 또는 피복화산력이라 하며, 이런 화산력들이 일출봉에 많이 나타나는 것은 수성화산활동이 물이 풍부한 상태에서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가파르게 경사진 층리 (33°27′29.7″N/126°56′13.6″E)

가파르게 경사진 층리 (33°27′29.7″N/126°56′13.6″E)

수성화산활동이 일어나게 한 물은 어디서 왔을까? 일출봉이 바닷가에 위치해 있으니 바닷물이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출봉의 남쪽 해안절벽 하부에 일출봉 형성 당시의 해수면을 지시하는 구조가 있다. 이 구조에는 해수면 위에서 화산회와 화산력이 낙하하여 만들어진 지층과 탄낭, 얕은 바다 속에서 화산쇄설물이 파도에 씻기며 퇴적되었음을 보여주는 사층리가 연속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탄낭이 있는 높이가 일출봉 형성 당시의 해수면이었으며, 그 높이가 현재의 해수면과 거의 일치한다. 그러므로 일출봉이 현재와 같이 얕은 바다 속에서 분출하였으며, 일출봉의 대부분이 해수면 위에서 쌓였음을 뜻한다.

일출봉응회구는 형성된 직후 침식작용을 받았다. 침식작용에 의해 바닷가까지 운반된 물질들은 파도와 해류에 의해 둥글게 마모되고 여러 종류의 조개화석을 갖는 퇴적층을 만들었다. 이 퇴적층이 성산반도의 바닷가를 따라 넓게 분포해 있는 신양리층이다. 신양리층의 기원물질은 일출봉응회구를 이루던 화산재와 화산력들이다. 이 층은 바다 쪽을 향해 완만히 경사진 얇은 지층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러한 지층들은 주로 파도가 치는 백사장이나 연안지역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양리층에 포함된 조개화석의 연대를 분석한 결과, 이 층은 약 5,000년 전부터 쌓인 것으로 해석되며, 따라서 일출봉은 이시기 이전에 형성된것으로 보인다. 신양리층은 일출봉을 조망하기에 좋은 위치를 제공해 줌은 물론 일출봉 형성 전후의 해양환경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층이다.

작은 알갱이를 화산재가 피복하여 만들어진 탁구공 크기의 부가화산력 (33°27′16.1″N/126°56′24.7″E)

작은 알갱이를 화산재가 피복하여 만들어진 탁구공 크기의 부가화산력 (33°27′16.1″N/126°56′24.7″E)

일출봉 형성 당시의 해수면을 지시하는 구조

일출봉 형성 당시의 해수면을 지시하는 구조

일출봉의 다양한 구조와 지층들

해수면을 지시하는 판상의 층리( ← )를 경계로 상부에는 화산재와 화산력이 낙하하여 만들어진 탄낭구조( ↓ )가 있는 층상의 화산력 응회암이 분포하고, 아래 부분에는 사층리구조( ↑ )와 깎고 채운 지층( → )이 있어 얕은 바다 속에서 화산쇄설물이 파도에 씻기며 퇴적되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중간 부분을 따라 일출봉 형성 당시의 해수면이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높이가 현재의 해수면과 거의 일치한다. 그러므로 일출봉이 현재와 같이 얕은 바다 속에서 분출하였으며, 일출봉의 대부분이 해수면 위에서 쌓였음을 뜻한다. (33°27′30.2″N/126°56′16.2″E)

일출봉의 다양한 구조와 지층들

절벽의 아래쪽 지층은 왼쪽으로 완만히 경사져 있으며 층리가 연속적이고 평행한 형태를 갖는다. 반면 절벽 위쪽의 지층은 경사가 거의 수평에 가깝지만 층 하나하나는 연속적이지 못하여 아래쪽 지층과 확연히 구별된다. 이 사진의 위쪽 지층은 일출봉의 분출이 끝난 후, 가파른 경사면에 쌓여있던 화산재와 화산력들이 빗물에 씻기고 크고 작은 사태를 일으키며 일출봉의 가장자리로 흘러내려 쌓인 지층들이다. 상하부의 지층을 비교해봄으로써 화산기원의 1차 퇴적작용과 침식에 기인한 2차 퇴적작용의 차이점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다. (33°27′30.9″N/126°56′05.1″E)

일출봉이 파도에 씻기며 만들어진 신양리층 (33°27′16.7″N/126°55′40.6″E)

일출봉이 파도에 씻기며 만들어진 신양리층 (33°27′16.7″N/126°55′40.6″E)

일출봉의 분출과 형성과정

일출봉은 현무암질 마그마가 얕은 바다 밑에서 분출하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수심이 낮은 곳에서 분출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분출 초기부터 폭발적인 분출을 하였다. 다량의 물이 마그마와 섞이며 폭발이 일어나 화산재화산력은 많은 물을 머금은 채 차갑고 끈적끈적한 상태로 분출하였다. 수백 m 높이의 분수처럼 솟구친 화산재와 화산력들은 화구 주변에 한 겹씩 쌓이며 다른 화산에서는 보기 힘든 뚜렷한 층리를 만들어 갔다.

화산재가 차곡차곡 쌓임에 따라 안식각(30°)을 훨씬 넘는 가파른 경사면을 가진 응회구가 만들어져 갔다. 가파른 경사로 인해 응회구의 사면에선 종종 크고 작은 사태가 일어났고 지층의 변형이 일어났다. 화산분출이 끝난 후에는 빗물과 유수에 의한 침식이 일어나 일출봉의 가장자리를 따라 재동된 퇴적층이 쌓이게 되었다. 바닷가까지 운반된 화산기원 물질들은 파도와 해류의 작용을 받으며 퇴적되어 신양리층이란 현세 퇴적층을 만들었다.

수면 위로 성장한 섯시형 응회구의 형성모식도

수면 위로 성장한 섯시형 응회구의 형성모식도 화산쇄설물의 수지상 방출과 재퇴적작용(우측), 그리고 그에 따른 퇴적상 조합(좌측)을 보여주고 있다. (손영관 자료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