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규일

하규일

[ 河圭一 ]

요약 성악가(가곡). 가곡명창. 일제강점기 가객(歌客). 자는 성소(聖韶). 호는 금하(琴下). 본관은 진주(晉州). 하준권(河俊權)의 아들.
출생 - 사망 1867년 ~ 1937년
하규일

1885년부터 삼촌 하중권의 제자 최수보(崔壽甫)에게 가곡을 배웠다. 1901년(광무 5) 한성부윤·한성재판소 판사(判事)를 지냈으며, 1910년 전북 진안군수를 지내다 한일합방 후 관직을 떠났다.

1911년에 설립된 의 학감(學監). 소장 , 소감 아래 교사로 임명된 에 , 가곡에 ·, 에 ·, 에 ·함화진·, 에 ·, 에 ·, 그리고 서양악과(西洋樂科)에 초빙된 김인식(金仁湜)과 함께 후학을 양성하였다.

1911년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의 학감에 취임했다. 1912년 조선정악전습소의 여악분교(女樂分校) 실장을 겸임하면서 하순일(河順一) 등과 함께 각 지방에서 상경하는 무부기녀(無夫妓女)를 모집하여 조선정악전습소에서 음악을 교습했으며, 같은 해 5월 24일에 발표된 조선정악전습소의 가곡 선생이었다. 이 기생조합이 (茶洞組合: 후에 )이다.

다동조합의 기생들에게 하규일은 ·가곡·를, (崔景植)은 를, (朱壽奉)은 를, (趙永學)은 를 각각 가르쳤다. 다동조합 출신의 여류명창 이진홍···조모란···이영산홍·은 하규일을 비롯한 권번 선생의 제자들이다.

1922년 대정권번(大正券番)을 설립했다. 1924년 조선권번(朝鮮券番)을 창립하고, 기생들에게 가곡·가사·시조를 가르쳤다. 의 제3기 이 입학한 1926년 당시 아악부원양성소의 사범(師範)이었다. 전공 분야는 가곡이었다.

1926~1937년 하규일은 (林基俊)과 함께 아악부원양성소(雅樂部員養成所)의 아악생(雅樂生)들에게 시조·가곡·가사를 가르쳤다. 즉 현행 12가사 중 하규일은 ""(白鷗詞)·""(黃鷄詞)·""(竹枝詞)·""(春眠曲)·""(漁父詞)·""·""(相思別曲)·""(勸酒歌)이상의 여덟 곡을 가르쳤다. 임기준은 ""(首陽山歌)·""(襄陽歌)·"처사가"(處士歌)·""(梅花打令)을 가르쳤다. 하규일의 문하에서 (李炳星)·(李珠煥)과 같은 아악부 출신의 이 배출되었다.

하규일이 창작한 시조로 (界面調二數大葉)의 가곡으로 불린 노래의 사설이 『』(增補歌曲原流)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정월이 돌아 오면 새해라고 하례 한다. 연년세세 새해라나 세세연년 옛해로다. 우리도 전해와 같이 만고불변하리라."

1928년 11월 3일 이왕직아악부가 최초로 (京城放送局)에서 ""(萬年長歡之曲)·""(萬波停息之曲)·""(鳳凰吟)·""(瑞日和之曲)·""(昇平萬歲之曲)·""(堯天舜日之曲)·""(長春不老之曲)·""(醉太平之曲)을 방송했을 때 출연하였다. 1928년 빅타회사에서 가곡을 취입했다. 1931년 『』(歌人必携)를 저술하였다.

1920년대 경성방송국에 출연해 가곡명창 김기현··의 을 지휘했다. 1928년 방송을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다. 1930~1937년 가곡 (界面頭擧)·계면초수대엽(界面初數大葉)·남녀창가곡(男女唱歌曲)·남창가곡·농(弄)·(頭擧)·(半葉) 등 여러 곡을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다.

김창근(장구)·()·(젓대)의 반주로 취입한 남창가곡(男唱歌曲) (界樂)·(界面三數大葉)·계면초수대엽(界面初數大葉)·소용(搔聳)·언락(言樂)·언편(言編)·우조초수대엽은 일축(日蓄)제비표 조선레코드에 전한다. 김수정·고재덕·김계선·김금해·김일우·민완식과 함께 취입한 가사 및 화편(花編)은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한다. 1930년 6월 17일 조선정악전습소의 발전을 위해 수요회(水曜會)를 쇄신할 때, 김금해·조이순과 함께 교사로 초빙되었다.

1934년 5월 8일 그의 제자 이상준(李尙俊)이 고악(古樂)을 배워 발표하는 피로연(披露宴)에 대한 기사가 보도됐다. 1934년 5월 27일 정악의 공로자로 장곡천정공회당에서 열린 표창식에서 상장을 받았다. 1937년 5월 24일 "조선음률계의 권위자 하규일옹이 자택에서 장서(長逝)"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半島時論』(1918) 2권 1호의 대정예기권번(大正藝妓券番)의 근하신년 광고에 나오고, 『三千里』(1936) 8권 6호에 발표된 낭낭공자(浪浪公子)의 글 "명기영화사(名妓榮華史): 조선권번"에 소개됐다. 『三千里』(1936) 8권 8호에 발표된 "조선·한성·종로 삼권번(三券番) 기생 예도(藝道) 개평(慨評)"에 소개되었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916~17쪽

참조어

금하(琴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