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식

최정식

[ 崔貞植 ]

요약 성악가(민요). 경서도명창. 서울 출생. 박춘재(朴春載)·최경식(崔景植)의 제자.
출생 - 사망 1886년 ~ 1951년

대한제국(1897~1910) 시절 경기소리와 함께 (西道雜歌)·(西道立唱)· 등 를 배워 일가를 이룬 명창이다. ·(崔相旭)에게 ··를 배웠다. 가사·시조를 비롯해 경서도 잡가·입창에 두루 능통했으며, 장기는 잡가였다. (元範山)의 문하에서 를 공부했고, 그의 제자인 ·· 등과 함께 (京畿雜歌)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작곡에도 재질을 발휘했하여 ""(金剛山打鈴)·""(豊登歌)를 작사·작곡했고, 서도잡가 ""(祭奠)을 축소 개편해 불렀다. (朝鮮券番)의 잡가선생 시절 가르친 문하에서 정경파·· 같은 여류명창이 나왔다.

1930년대 잡가의 거장 최경식의 주동으로 조직된 (朝鮮歌舞研究會)의 박춘재·· 등과 함께 활동했다. 오케음반에 ""·"이화타령"(梨花打令)·""을 취입하였다.

1934~1940년 "개고리타령"·""·""·"격양가"(擊穰歌)·경기가요(京畿歌謠)·경기속요(京畿俗謠)·(京畿座唱)·""(景福宮打令)·경성가요(京城歌謠)·경성입창(京城立唱) 등의 여러 곡을 방송하기 위해 (京城放送局)에 출연했다. ·과 함께 취입한 경기잡가(京畿雜歌)·"노래가락"·"바위타령"·속요·"신자기타령"·"이화타령"·잡가·"장긔타령"은 오케음반에 전한다. 묵계월(墨桂月)에게 경서도창과 민요를 가르쳤다. ·정득만· 등과 함께 (朝鮮音樂協會)의 소속 가무단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직후 삼화권번(三和券番)과 서울기생조합을 통합해서 만든 (藝星社)에서 잡가·민요 담당교사였다. (大韓國樂院)의 문화국원으로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901~9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