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운송지곡

창운송지곡

[ 昌運頌之曲 ]

요약 조선후기와 대한제국(1897~1910) 시절 연례악(宴禮樂) 및 정재(呈才) 반주음악의 한 곡명. "낙양춘"(洛陽春)·"수룡음"(水龍吟)·"향당교주"(鄕唐交奏)·"원무곡"(原舞曲)의 아명(雅名).

순조 무자년(1828) 『』(進爵儀軌)에 의하면, 1828년(순조 28) 순조의 왕세자 효명세자(1809~1830)가 어머니 순원왕후(1789~1857)의 40세를 경축하기 위해 창경궁 자경전(慈慶殿)에서 잔치를 열었을 때, 그리고 1829년(순조 29) 효명세자가 부왕의 40세 생일과 즉위 30년을 경축하기 위해 창경궁 자경전에서 내진찬(內進饌)을 열었을 때, 이 악곡은 왕세자가 사배(四拜)할 때 ""·""의 으로 연주되었다.

1848년(헌종 14) 헌종의 할머니 순원왕후(1789~1857)의 보령(寶齡) 60세 및 어머니 신정왕후(1808~1890)의 보령 40세를 경축하는 잔치가 통명전(通明殿)에서 열렸을 때, 이 악곡은 전하(殿下)가 사배(四拜)할 때 ""의 아명으로 연주되었다. 1868년(고종 5) 대왕대비 신정왕후의 회갑을 경축하는 내진찬(內進饌) 때, 1877년(고종 14) 신정왕후의 칠순 및 왕대비 철인왕후(1837~1878)의 망오순(41세)을 경축하는 잔치 때, 그리고 1892년(고종 29) 고종의 망오순(41세) 및 등극 30년을 경축하는 잔치 때 공연된 (佳人剪牧丹)의 반주인 "수룡음"·"향당교주"·""의 아명으로 연주되었다.

1901년(광무 5) 5월 헌종(1834~1849)의 계비 명헌태후(1831~1904)의 망팔순(71세)을 경축하는 잔치 때, 1901년 7월 고종황제(高宗皇帝)의 보령 50세를 경축하는 만수성절(萬壽聖節)의 잔치 때, 그리고 1902년(광무 6) 4월 고종황제의 보령이 51세가 되어 (耆老所)에 입소한 것을 경축하는 잔치가 덕수궁 함녕전에서 열렸을 때 공연된 (六花隊)·(響鈴舞)·(寶相舞)·육화대무(六花隊舞)의 반주인 "원무곡"의 아명으로 연주되었다.

참고문헌

  • 『進爵儀軌』(1828년), 卷1.21a1
  • 『進饌儀軌』(1829년), 卷1.37b4
  • 『進饌儀軌』(1868년), 卷1.17a8
  • 『進饌儀軌』(1877년), 卷1.34b2~3
  • 『進饌儀軌』(1892년), 卷1.66a2~3
  • 『進饌儀軌』(1901. 5.), 卷1.33a1
  • 『進宴儀軌』(1901. 7.), 卷1.71a4
  • 『進宴儀軌』(1902. 4.), 卷1.41a9~10, 55a4
  • 『의궤 속의 우리 춤과 음악을 찾아서』 송방송, 서울: 보고사, 2008년, 214~225, 250~61, 338~48, 396~404, 476~87, 536~46, 578~90, 636~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