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

정양

[ 鄭穰 ]

요약 음악이론가. 세종(1418~1450) 때 문신(文臣). 본관은 하동(河東).

142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좌사간대부를 지냈고, 경시서주부(京市署主簿)를 지낼 때 의 명을 받아 예문관 대제학 유사눌(柳思訥)·집현전 대제학 정인지(鄭麟趾)·봉상판관(奉常判官) (朴堧)과 함께 구악(舊樂)을 정리하였다.

음률에 밝은 정양은 1423년(세종 5) 진사시험에 합격해 (奉常寺)의 주부(主簿)로 임명되었다가 (樂學別坐)가 됐다. 1429년(세종 12) (鑄鍾所)를 설립하여 (編鍾)을 제작할 때 (領樂學) (孟思誠), (樂學提調) 유사눌, 악학별좌(樂學別坐) 박연과 함께 참여하였다.

1430년(세종 12) 일시 병에 걸린 박연을 대신해 선정된 악학별좌 정양은 박연과 함께 (慣習都監)의 악공(樂工)·무공(武工)·여기(女妓)들이 봉상시(奉常寺)의 재랑(齋郞)·무공처럼 (雅樂)을 익혀가는 업무를 맡아보았다. (蔡元定)의 『』(律呂新書)와 여러 악서를 참작하여 새 (記譜法) 창안에도 공을 세운 정양은 상호군(上護軍) (南汲), 대호군(大護軍) 박연과 함께 안장 갖춘 말을 임금으로부터 받았다.

1431년(세종 13) 6월 군기판관(軍器判官)이 된 정양은 박연과 함께 새로운 회례악기(會禮樂器)를 만들었다. 그 이듬해에 그는 박연과 상의하여 (會禮宴)에 쓰일 일무(佾舞)와 악장(樂長)의 가사를 지었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8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