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정

정과정

[ 鄭瓜亭 ]

요약 고려 의종(毅宗) 때 정서(鄭敍)가 지은 노래. 일명 정과정곡(鄭瓜亭曲)·삼진작(三眞勺).

이 곡의 내력은 대략 이렇다. 외척(外戚)과 혼인을 맺어 인종의 총애를 받아 내시랑중(內侍郞中)을 지낸 그는 1146년(의종 1) 의종의 동생을 왕에 세우려고 했다는 김존중(金存中) 일파의 모함 때문에 동래로 추방됐을 때, 의종이 그를 떠나보내면서 이르기를, '오늘 가게 된 것은 조정의 의론에 물려서이다. 머지않아 소환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믿고 소환명령을 기다렸으나 끝내 소식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를 타면서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몹시 처량했다. 그가 지어 부른 노래를 후세 사람들이 그의 성(정)과 호(과정)를 따서 "정과정"이라고 했다고 『』 권97(열전)에 전한다.

(李齊賢)은 당시 가객들이 부르던 "정과정"의 한 절을 악부시(樂府詩)에 담아 읊었다. 그의 문집인 『익재집』(益齋集)에 이렇게 전한다.

"날마다 눈물로 옷깃을 적시며 봄산의 두견새처럼 슬피 운다네.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지 마시라. 이 내 마음 새벽달과 새별이 알아주리."

고려 후반기 가객들이 즐겨 부르던 "정과정"은 만기(慢機)·중기(中機)·삭기(數機)의 삼기곡(三機曲)으로 완성된 가곡 작품으로 되었다. 이 "정과정"은 조선왕조에 이르러 ""(三眞勺)이라는 이름으로 궁중에서 연주됐을 뿐 아니라 가곡(歌曲)의 하나로 되었다.

『』(樂學軌範 1493) 권5에 의하면, (1469~1494) 때 (鶴蓮花臺處容舞合設) 공연에서 (呈才女伶)들은 이 "정과정"의 가사를 (唱詞)로 다음과 같이 불렀다.

전강(前腔) "내 님을 그리imagefont와 우니다니/중강(中腔) 졉동새난 이슷imagefont요이다/후강(後腔) 아니시며 가츠르신 imagefont 아으/부엽(附葉) 잔월효성(殘月曉星)이 아imagefont시리이다/대엽(大葉) 넉시라도 님은 imagefontimagefont녀져라 아으/부엽(附葉)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이엽(二葉) 과(過)도 허믈도 천만(千萬) 업소이다/삼엽(三葉) imagefont힛 마리신뎌/사엽(四葉) imagefont옷븐뎌 아으/부엽(附葉) 니미 나imagefontimagefont마 니imagefont시니잇가/오엽(五葉)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정과정"의 악보는 『』(時用鄕樂譜) 및 『』(大樂後譜)에 전하고, 음계는 5음음계이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5.1896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159, 161, 162, 164쪽
  • 『력사에 이름을 남긴 음악인들』,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2001년, 2002년, 권1.94~98, 120쪽
  • 『樂人列傳』 허경진, 서울: 한길사, 2005년, 96~97쪽
  • 『高麗音樂史研究』 宋芳松, 서울: 일지사, 1988년, 80, 81쪽

참조어

삼진작(三眞勺) , 정과정곡(鄭瓜亭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