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고취

전정고취

[ 殿庭鼓吹 ]

요약 대궐(大闕)의 뜰에서 연주하는 고취악대(鼓吹樂隊).

전정고취(殿庭鼓吹)는 (殿後鼓吹)와 대칭을 이룬다. 궁전의 뜰에서 연주한 전정고취는 (1469~1494) 때 악사(樂師) 2명과 악공(樂工) 50명으로 구성됐다. 이 악대는 박(拍) 1명, 6명, 2명, 8명, 6명, 4명, 2명, 2명, 2명, 2명, 2명, 2명, 그리고 젓대 8명으로 편성됐다.

전정고취는 매달 네 번씩 문무백관이 조회하는 조참의식(朝參儀式) 때, 과거에 급제(及第)한 사람에게 차례를 정하는 (文武科殿試) 때, 생원(生員)과 진사(進士)의 합격자에게 백패를 주는 방방(放榜)의식 때, 중국황제에게 표문(表文)을 올리는 배표(拜表)의식 때, 그리고 배전(拜箋)의식에서 임금을 대신해서 행하는 (權停禮) 때 을 연주하였다.

『』(樂學軌範 1493) 권2에 의하면, 조참(朝參)·문무과전시(文武科殿試)·(生員進士放榜)·배표전의 권정례 때 진설(陳設)된 전정고취의 음악이 시작할 때 휘(麾)를 들면 모든 악기가 일제히 연주를 시작하고, 휘를 내리면 박(拍)을 급히 쳐서 음악을 그친다.

조선전기 전정고취의 악기편성은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과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을 겪은 이후 축소되는 변천과정을 거쳤다. 즉 향비파·가야고·거문고··아쟁·월금 같은 가 악기편성에서 제외되어 위주로 편성된 점이 첫째 변화양상이다. 둘째는 대고가 교방고로 바뀐 점이다. 전정고취의 악기편성이 관악기 위주로 바뀐 것은 (宗廟祭禮樂)의 악현(樂懸)에서도 발견되는 일반적인 변화양상이었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5.1888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288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방송, 429쪽
  • 『악학궤범용어총람』 송방송, 서울: 보고사, 2010년, 2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