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치

이날치

[ 李捺致 ]

요약 성악가(판소리). 철종(1849~1863)·고종(1863~1907) 때 서편제(西便制) 명창. 자는 경숙(敬淑). 일명 이경숙(李敬淑).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출생.
출생 - 사망 1820년 ~ 1892년

김창환(金昌煥)과는 이종간이다. 젊어서는 줄타기를 했는데 날치와 같이 날세게 줄을 탄다고 하여 날치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고수로 행사하다가 에 뜻을 두고 (朴裕全)의 문하에서 수년간(數年間) 도야(陶冶)를 받고 수제자가 됐다. 이날치는 당시 대명창으로 알려진 ·과 함께 활동한 명창이다.

기예가 남달리 비범하고 의 소유자였다. 그 성량이 대단하여 의 공연 때 나팔을 방창(倣唱)하면 완연(宛然)히 실제의 소리를 낼 정도였다. 그의 애원한탄(哀怨恨歎)은 청중의 허희체루(噓唏涕淚)를 자아내다가도 다시 그의 골계적(滑稽的) 형용동작(形容動作)은 청중을 포복절도(抱腹絶倒)케 했다고 한다. 박만순(朴萬順)의 소리는 식자(識者)의 칭예(稱譽)를 받았지만, 이날치의 소리는 남녀노소(男女老少) 시인묵객(詩人墨客) 초동목수(樵童木竪) 할 것 없이 모두가 찬미(讚美)했다고 한다.

이렇듯 박만순과 쌍벽을 이루었던 이날치의 ""은 당시에 독보적이었으므로, 뻐꾹새·쑥국새의 소리를 하면 실물의 새가 소리를 따라 날아든 일이 간혹 있었다고 전하는 사람도 있다. 창극조로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재능을 지녔던 이날치가 중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 석(供養米三百石)에 몸이 팔려 남경선인(南京船人)에게 끌려가는 영결(永訣)의 장면이나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로 몸을 던지는 장면 같은 인생의 비절참절(悲絶慘絶)함을 애사비조(哀詞悲調)의 소리로 표현하여 무뚝뚝한 노재상(老宰相)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 일화(逸話)는 유명하다.

만년(晩年)에 장성(長城)에 이거(移居)하다가 향년(享年) 72세로 세상을 떠난 그의 특장(特長)은 춘향가와 심청가였고, 그의 더늠은 춘향자탄가(春香自歎歌) 중 망부사이다. 박유전(朴裕全)의 전통을 계승한 이날치는 "새타령"에 독보적 인물로 유명할 뿐 아니라, 그의 더늠은 춘향가 중 춘향의 "자탄가"(自歎歌)에 전한다. 김창환·이 방창한 망부사는 정노식(鄭魯湜)의 『朝鮮唱劇史』에 전한다.

전도성의 구술(口述)에 의하면, 자기의 소년 시절 명창 박만순·이날치의 (광대가 판소리를 마치고 최종에 과거 역대 명창을 순서로 일일이 호명한 후에 다시 자기의 독특한 가조(歌調)로 한바탕 노래하기)에서 광대의 효시(嚆矢)로 (河漢潭)과 (崔先達)을 꼽았다고 한다.

그가 처음으로 를 시작했다. 반드림제의 특징은 첫째로 겹목을 쓰는 점이고, 둘째로 소리의 군데군데 힘을 넣어서 부르는 을 많이 쓰고 괴대죽 붙임을 많이 쓰는 점이며, 셋째로 이 좀 요란한 점이다. 현재 전라남도 광주(光州)와 목포(木浦) 지방에서 우세하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622쪽

참조어

리날치(李捺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