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렬

유창렬

[ 柳昌烈 ]

요약 성악가(범패). 범패(梵唄) 대가. 이범호(李梵湖)의 제자. 서울 출생. 법호(法號)는 범공(梵公). 이범호의 계보를 이은 범패의 예능보유자.
출생 - 사망 1898년 ~ 1968년

11세 때 (西滿月)의 제자인 에게 를 배웠고, 그 뒤 계속 도 배웠으며, 서만월에게서 를 직접 배웠다.

11세 때 범호에게 를 배우기 시작하여 12세 때 중강(中講: 범패승의 조수)이 됐다. 16세 때 범호에게 짓소리 ""(擧靈山)·""(告香偈)·""(燈偈)·""(引聲) 순서로 배웠다. 만월(滿月)에게 안채비소리인 ""(擧佛)·""(功德偈)·""(己承遍)·""(法食己遍)·""(普召請眞言)·""(四陀羅尼)·""(四弘誓願遍)·""(神呪加持遍)·""(宗室茶偈)·""(證明茶偈)·"천수"(千手)·""(七如來遍)·""(下壇施食請文)을 배웠다.

1913년부터 1914년까지 범호로부터 "인성"·"거령산" 등의 짓소리를 배웠고, 그 뒤 가곡 한바탕까지 이수하였다. 16세 때 구례군수의 49재가 당시 500원이라는 거액으로 백련사에서 3주야간 올려졌을 때 (上番)을 진관사(津寬寺)에서, (中番)을 화계사(華溪寺)에서, (末番)을 봉원사(奉元寺)에서 각각 초청하였다. 그런데 동산(東山)의 화계사가 서산(西山)의 백련사에 와서는 짓소리를 꺼내기가 어려웠는지, 화계사의 벽봉(碧峰)이 백련사의 이범호에게 범공에게 장부 좀 대주라고 이르게 하여, 16세의 어린 나이로 짓소리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지반지심"(志盤至心)의 장부(丈夫)를 잘 수행하여 스승을 놀라게 하였다.

21세에 백련사의 어장이 된 이래 여러 곳에 불려 다니며 범패를 가르쳤으나, 이렇다 할 제자는 남기지 못했다. 범공은 21세 때 백련사(白蓮寺)의 어장(魚丈)으로 임명됐다. 그 후 수련을 거듭하면서 여러 절에서 초청을 받아 범패를 가르쳤다. 칠판에 범패의 가사를 적어놓고 선율의 굴곡(屈曲)을 파도형(波濤形)으로 그려서 가르쳤다고 한다.

광복 후 환속(還俗)하여 사업에 종사하는 한편, 1955년경에는 에서 가곡을 배우기도 했다. 가곡과 범패가 흡사한 부분이 많음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1960년대 초에는 그가 아는 모든 범패를 녹음하여 국립국악원에 두었다. 1965년 9월에는 그가 장부가 되어 청량사(淸凉寺)에서 조사를 위한 (常住勸供齋) 전 바탕을 ··윤만순··한동희 등과 함께 녹음했다. 이 녹음을 1967년 (韓萬榮)이 채보하였다.

1965년 9월 25일 서울 청량사(淸凉寺)에서 거행된 상주권공재 때 김운공(金耘空)·박송암(朴松庵)·한동희(韓東熙)·(尹東和)·강동진(姜東振)과 함께 출연하여 범패를 불렀다. 그가 독창한 "종성"(鍾聲)·""(故我偈)·"여수게"(濾水偈)·""(觀音讚)·""(懺悔偈)·""(歌詠)·""(獻座偈)·""(茶偈)·""(加持偈)·""(普供養眞言)·""(願我偈)를 한만영이 그의 『』(梵唄: 常住勸供)에 채보하였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5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