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수

양덕수

[ 梁德壽 ]

요약 거문고 연주가. 선조(1567~1608) 때 장악원(掌樂院)의 악사(樂師). 거문고악보 『양금신보』(梁琴新譜 1610)의 저자.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 때 남원(南原)으로 피난 온 그는 그의 친구인 임실현감(任實縣監) (金斗南)의 도움으로 1610년(광해군 2) 거문고악보인 『』를 펴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악사 양덕수는 자기 고향 전라도 남원으로 피신하여 살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양덕수는 고향에서 눌러 살면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될 수록 피하고 오로지 거문고 타는 것으로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을 무렵 그의 친구 김두남이 임실현감으로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거문고를 가지고 임실현감을 찾아간 양덕수는 여러 날을 묵으면서 매일 같이 거문고를 탔고, 그가 타는 거문고 소리를 들은 현감은 자기는 비록 음악을 잘 모르지만 그 거문고 소리야말로 예로부터 전해오는 거문고음악이 아니겠는가 하면서 양 악사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거문고를 잘 타고 또 능히 악보를 만들어 전할 수 있으니, 거문고 연주법이 다시는 단절되지 않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현감의 이 말에 양덕수는 쾌히 승낙하고 당시 유행되고 있던 가곡과 거문고 연주법을 후세에 전할 목적으로 거문고악보 『양금신보』를 편찬했고, 이 거문고악보는 1610년(광해군 2) 임실현감의 도움을 받아 목판본으로 출판되었다.

16정간보에 (合字譜)와 (肉譜)로 기보한 (慢大葉)·""(中大葉)·"북전"·"조음"(調音)·"감군은" 등 모두 아홉 곡이 『양금신보』에 실려 있다. 양덕수 관련의 기사는 김두남이 쓴 『양금신보』의 서문에 이렇게 전한다.

"예전 악사였던 양덕수는 로 세간에 이름났다. 그가 특히 잘하는 것은 거문고이다. 그는 임진왜란을 피하여 남원에 와서 살았는데, 사람 만나는 일을 다 끊고 오로지 거문고에만 뜻을 두었다. ··· 드디어 이 내용을 책판에 새기고, 그 이름을 『양금신보』라고 하였다. 만력(萬曆 1573~1620) 경술년(庚戌年 1610, 광해군 2) 김두남이 쓰다"라고.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516쪽

참조어

량덕수(梁德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