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신성

[ 申晟 ]

요약 악관(樂官). 숙종(1674~1720) 때 문신(文臣). 거문고악보 『금보신증가령』(琴譜新證假令)의 저자. 본관은 평산(平山).

1680년(숙종 6)에 편찬한 그의 거문고악보 『』에는 (平調)·(平調界面調)·(羽調)·(羽調界面調)의 (數大葉) 제1·제2·제3 및 ""(靈山會相)이 실려 있다. 이 악곡들은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 이후 향악곡(鄕樂曲)의 변천을 보여주는 귀중한 악보로 평가되고 있다. 신성과 그의 거문고보 관련 기사는 『금보신증가령』의 발문(跋文)에 이렇게 전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음률을 좋아하여 스무 살에 이미 거문고를 탈 줄 알았다. 여러 사람들의 (琴譜)를 널리 살펴보니 어떤 악보는 너무 순박하여 절주(莭奏)의 빠르고 느림을 맞출 수가 없었고, 어떤 악보는 너무 소략하여 (五音)이 상생상극이 그 율에 어울리지 못했다. 그밖에 쇠퇴한 세상에서 숭상하는 바는 속되고 천하며 비루한 소리이니, 이 어찌 군자가 제어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예전에 내가 악관으로 참여했을 때에는 노숙한 (樂師)와 (樂工)들에게 명하여 그들이 배운 바를 열람하고, 또 그들과 더불어 음률을 만드는 원리와 음률을 쓰는 방법을 물은 적이 있었다. ···

""(與民樂)·""(步虛子)·"영산회상"(靈山會相) 등의 (別曲)에 이르러서는 세종조에 (朴堧)·성현(成俔) 등이 교정한 것을 한 가지로 좇아, 감히 더하거나 줄이지 않았다. 책이 이루어진 지 이미 오래됐지만 잇단 직무 때문에 매여 고증할 겨를이 없었다. 경신년(庚申年 1680) 8월 내가 홍천(洪川)에서 감무(監務)할 때 우연히 부창병(浮脹病)을 앓아서 병을 조리하는 중에 예전에 집성한 금보를 펼쳐보며 날마다 바로잡고 고증하여, 『신증금보』(新證琴譜)라 하였다. ··· 경신년(1680) 8월 평산 신성이 쓰다"라고.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4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