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

송사

[ 宋詞 ]

요약 중국 송(宋)나라의 사문학(詞文學)의 총칭. 일명 사악(詞樂)·사(詞).

『』 권71(「악지」)의 (唐樂曲)은 모두 송사이다. 송사는 크게 두 갈래로 구분된다. 첫째는 노래와 춤 곧 가무희(歌舞戲)가 포함된 대곡(大曲)이고, 둘째는 노래 가사만으로 구성된 (散詞)이다. 대곡과 산사를 포함한 모두가 송사이다. 송사와 관련된 음악을 사악이라고 부른다.

고려 문종(1046~1083) 때 우리나라에 송사가 소개됐다. 예종(1105~1122) 때 사작(詞作)이 군신 간에 유행했고, 고려후기 (李齊賢) 같은 사문학의 대가를 배출했다.

『고려사』 권71(「악지」)에 전하는 당악곡은 모두 송사(宋詞)이다. 송사 중의 대곡은 (散序)·(中序)·파(破), 이상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서정적 내용의 산서에는 일정한 박자가 없고 춤을 수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명 배편(排遍)이라고 하는 중서는 일정한 박자를 지닌 악곡으로 춤을 수반하며, 5편의 시를 노래로 부르도록 구성됐다. 그리고 일명 입파(入破)로 알려진 파는 관객을 흥분시킬 수 있는 빠른 박자와 빠른 동작의 춤을 수반하는데, 빠른 부분의 악곡이 (曲破)이다.

대곡의 구조적 특징을 지닌 헌선도(獻仙桃)·(壽延長)·(五羊仙)·(抛毬樂)·(蓮花臺)·(惜奴嬌曲破)·만년환만(萬年歡慢), 이상 일곱 종목의 송사는 『고려사』 권71(「악지」)에 전한다. 이 대곡 중 헌선도·수연장·오양선·포구락·연화대, 이상 다섯 대곡의 곡명이 『』(樂學軌範 1493)에서는 (唐樂呈才)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이 일곱 대곡 외 『고려사』 권71(「악지」)에 전하는 당악곡은 ""(憶吹簫慢)·""(洛陽春)·"월화청만"(月華淸慢)·""(轉花枝令)·""(感皇恩令)·""(醉太平)·"하운봉만"(夏雲峰慢)·"취봉래만"(醉蓬萊慢)·"황하청만"(黃河淸慢)·""(還宮樂)·""(淸平樂)·""(荔子丹)·"수룡음만"(水龍吟慢)·""(傾盃樂)·"태평년만"(太平年慢)·"금전악만"(金殿樂慢)·""(安平樂)·"애월야면지만"(愛月夜眠遲慢)·"석화춘조기만"(惜花春早起慢)·""(帝臺春慢)·""(千秋歲令)·""(風中柳令)·""(漢宮春慢)·"화심동만"(花心動慢)·"우림령만"(雨林鈴慢)·""(行香子慢)·"우중화만"(雨中花慢)·""(迎春樂令)·""(浪淘沙令)·""(御街行令)·"서강월만"(西江月慢)·""(遊月宮令)·""(少年遊)·"계지향만"(桂枝香慢)·""(慶金枝令)·""(百寶粧)·""(滿朝歡令)·""(天下樂令)·""(感恩多令)·"임강선만"(臨江仙慢)·""(解佩令), 이상의 41곡은 모두 노래 가사만으로 구성된 산사이다.

1045년 전후로 활동한 유영(柳永)의 작품으로 밝혀진 산사는 "경배악"·"낭도사령"·"어가행령"·"우림령만"·"전화지령"·"취봉래만"·"하운봉만," 이상 일곱 가지로 가장 많다. 그리고 "소년유"의 작가는 안수(晏殊 991~1055)로 밝혀졌고, "낙양춘"은 구양수(歐陽修 1000~1072)가 지은 산사이며, "황하청만"의 작자는 12세기 전기의 조단례(晁端禮)이다. 그리고 조기(趙企 1063~1120)가 "감황은령"의 작가이고, "금전락만"은 소식(蘇軾 1036~1101)이 지은 산사이며, "제대춘만"의 작자는 11세기 후반에 활동한 이갑(李甲)이다.

『고려사』 권71(「악지」)에 전하는 송사(산사)의 작자 일람표

『고려사』 권71(「악지」)에 전하는 송사(산사)의 작자 일람표
산사(散詞)의 곡명 작자 생몰연대

감황은령(感皇恩令)

조기(趙企)

1063~1120년

경배악(傾盃樂)

유영(柳永)

1045년 전후 재세

금전락만(金殿樂慢)

소식(蘇軾)

1036~1101년

낙양춘(洛陽春)

구양수(歐陽修)

1000~1072년

낭도사령(浪淘沙令)

유영(柳永)

1045년 전후 재세

소년유(少年遊)

안수(晏殊)

1045년 전후 재세

어가행령(御街行令)

유영(柳永)

1045년 전후 재세

우림령만(雨林鈴慢)

유영(柳永)

1045년 전후 재세

전화지령(轉花枝令)

유영(柳永)

1045년 전후 재세

제대춘만(帝臺春慢)

이갑(李甲)

1045년 전후 재세

취봉래만(醉蓬萊慢)

유영(柳永)

1045년 전후 재세

하운봉만(夏雲峰慢)

유영(柳永)

1045년 전후 재세

화심동만(花心動慢)

원일(阮逸)

1052년 전후 재세

황하청만(黃河淸慢)

조단례(晁端禮)

1122년 전후 재세

위의 표에 정리된 산사 중에서 가장 앞선 연대의 작품이 안수의 "소년유"이고, 조단례의 "황하청만"이 가장 늦게 창작된 작품이다. 11세기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감안할 때, 대부분의 송사가 늦어도 12세기 무렵에 고려사회에 유입됐다고 보면 무난하다. 1073년(문종 27) 교방여제자(敎坊女弟子) 진경(眞卿)이 송사의 대곡 중 하나인 포구락(抛毬樂)을 공연했다. 1071년 의 신종(1067~1085)이 교방악사(敎坊樂師)를 고려조정에 파견했으므로, 11세기 후반부터 송사가 고려조정에 소개됐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3.1303~304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173~76쪽

참조어

사(詞), 사악(詞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