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패기생

삼패기생

[ 三牌妓生 ]

요약 대한제국(1897~1910) 시절 기생의 한 갈래.

일제강점기 일정한 교육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기생조합인 (券番)에 나가지도 못한 하류층의 기생들이 삼패기생이다. 조선말기 일패·이패· 이렇게 세 등급의 기생이 있었다. 왕실이나 관청에 소속된 기생이 일패기생이었고, 이패기생은 일패 출신의 기생으로 첩(妾)이 된 후에 밀매음(密賣淫)을 하는 은근자(慇懃者) 또는 은군자(隱君子)이었으며, 삼패기생은 몸을 파는 창녀(娼女) 곧 탑앙모리(搭仰謀利)였다.

이들 외에도 화랑유녀(花郎遊女)·여사당패(女社堂牌)·색주가(色酒家) 등 소위 갈보(蝎甫)라고 부른 매춘부(賣春婦)들이 있었다고 이능화(李能和)의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에 나온다.

일제강점기 권번에 기적(妓籍)을 두고 기생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3년 동안의 교육기관을 거치면서 (歌曲)·(時調)·(歌詞)·서예(書藝)·(呈才) 등의 격조 높은 기예를 학습한 후 (排盤)을 통과해야만 기예증(技藝證)을 받아 소위 일패기생이 될 수 있었다.

대한제국 시절 일패기생은 (惠民署)나 (內醫院)의 (醫女) 출신인 (藥房妓生), 공조(工曹)나 상의원(尙衣院)의 (針線婢) 출신의 (尙房妓生)들이었다. 내의원 출신의 약방기생은 궁초(宮綃)댕기를, 혜민원 출신의 약방기생은 통견(通絹)댕기를, 그리고 상방기생은 갑사(甲紗)댕기를 이렇게 서로 다른 댕기를 드리었다. 이러한 일패기생들이 대한제국 말기 (漢城妓生組合所)를 거쳐 한일합방 후 다동기생조합(茶洞妓生組合)과 광교기생조합(廣橋妓生組合)에서 활동하게 됐다. 이 일패기생들은 하류 출신의 삼패기생들과 구분됐다.

삼패기생들은 주석(酒席)에서 (雜歌)나 (民謠)를 주로 불렀지만, 일제강점기 삼패 출신의 기생으로 (寶貝)·(紅桃)·강진(康津)·연연(妍妍) 등이 유명했다고 (李昌培)의 『韓國歌唱大系』에 나온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3.1154~55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539~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