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옥력장지곡

산하옥력장지곡

[ 山河玉曆長之曲 ]

요약 조선후기와 대한제국(1897~1910) 시절 정재(呈才) 반주음악의 한 곡명. "낙양춘"(洛陽春)·"향당교주"(鄕唐交奏) 및 "원무곡"(原舞曲)의 아명(雅名).

"산하옥력장지곡"은 1829년(순조 29) 순조의 왕세자 효명세자(1809~1830)가 부왕의 40세 생일과 즉위 30년을 경축하기 위한 외진찬(外進饌) 때, 1887년(고종 24) 대왕대비 신정왕후(1808~1890)의 팔순 및 효명세자 즉 익종에게 관례(冠禮)를 올린 60주기를 경축하는 잔치 때, 그리고 1892년(고종 29) 고종의 망오순(41세) 및 등극 30년을 경축하는 잔치 공연된 (響鈸舞)·(船遊樂)·(演百福之舞)의 반주곡인 ""의 으로 연주되었다.

1901년(광무 5) 5월 헌종(1834~1849)의 계비 명헌태후(1831~1904)의 망팔순(71세)을 경축하는 잔치 때, 1901년 7월 고종황제(高宗皇帝)의 보령(寶齡) 50세를 경축하는 만수성절(萬壽聖莭)의 잔치 때, 1902년(광무 6) 4월 고종황제의 보령이 51세가 되어 (耆老所)에 입소한 것을 경축하는 잔치 때, 그리고 1902년 11월 고종황제의 망육순(51세) 및 등극 40년을 경축하는 잔치 때 공연된 (響鈴舞)·헌선도(獻仙桃)·(四仙舞)·(萬壽舞)의 반주곡인 ""·"향당교주" 및 ""의 아명으로 연주되었다.

참고문헌

  • 『進饌儀軌』(1829년), 附編.7b9
  • 『進饌儀軌』(1887년), 卷1.37b12
  • 『進饌儀軌』(1892년), 卷1.63a11
  • 『進饌儀軌』(1901. 5.), 卷1.37b12~38a1, 40b3
  • 『進宴儀軌』(1901. 7.), 卷1.52b3~4, 71b9
  • 『進宴儀軌』(1902. 4.), 卷1.39b4~5, 55b8, 62a3
  • 『進宴儀軌』(1902. 11.), 卷1.52b5(上.258), 68a9(上.289)
  • 『의궤 속의 우리 춤과 음악을 찾아서』 송방송, 서울: 보고사, 2008년, 250~61, 432~42, 476~87, 536~46, 578~90, 636~49, 698~7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