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

김용만

[ 金容萬 ]

요약 작곡가·지휘자. 서울시립국악단·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지휘자. 서울 출생. 호는 우헌(又軒)·성석(成石)·나선(羅仙)·해천(海玔). 국악사양성소(國樂士養成所) 제7기 졸업생. 전공은 가야금.
출생 - 사망 1947년 ~ 1998년

(현 국악고)를 1967년에 졸업한 후 1973년 서울대 음대 를 졸업했다. 장악과 연주원(1972~1979)을 거쳐 1973년부터 국립국악원 지휘자로 활약했다.

1966년 국립국악원 신국악작곡공모에 입선했고, 1969년 문예창작품공보 국악작곡 부문에 당선되었다. 1974년 7월 26일 국립국악원 주최 제1회 한국음악창작발표회 때, 1975년 2월 28일 국립국악원 주최 제3회 한국음악창작발표회 때, 그리고 1976년 10월 27일 제7회 한국음악창작발표회 때 출품했다. 1977년 9월 20일 제59회 정기연주회 때 그의 "곤"(坤)이 연주되었다. 1978년 2월 27일 제11회 한국음악창작발표회 때 "영계"를 발표했고, 1982년 12월 1일 한국창작음악연구회의 제1회 발표회 때 "발바심"을 발표하였다.

1983년부터 1984년까지 미국 LA시립대에서 수학했으며, 1986년 미국 캘리포니아 골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수석지휘자로 활동했다. 1988년 국립국악원 신축청사 개관 기념공연 때 위촉 작품을 출품했고,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로 부임하였다. 1989년 9월 대한민국 국악제의 서울 공연 때 출품했고, 12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국악성가의 밤」 공연 때 그의 "북소리"가 초연되었다.

1990년 12월 7일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제167회 정기연주회 때 "나의 사랑 위하여"를 발표했고, 1990년 3월 23일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제161회 정기연주회 때 "Yesterday is Tomorrow"가, 12월 7일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제167회 정기연주회 때 "나의 사랑"이 초연되었다. 1991년 2월 27일과 3월 8일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정기공연 때 "푸른 바람"을 발표했고, 4월 16일 제3회 국악가요의 날 공연 때 "간다 나의 사랑"(황대익 시)을 발표했으며, 4월 17일 「창작음악의 밤」 때 "느껴지는 그 사랑"을 발표하였다.

1992년 3월 27일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 때 자작곡 "김병호류 가야금산조에 의한 가야금협주곡"을 지휘했다. 그해 12월 8일 제12회 정기연주회 때 출품했으며, 12월 10일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92송년음악회 때 지휘하였다. 1993년 6월 22일 유경조 대금독주회 때 "해천사인(옥 바다소리)"을, 그리고 10월 29일 새여름실내악단 제2회 정기연주회 때 실내악곡 "해산정조"(海珊情調)를 발표했고, 6월 17일 제39회 한국음악창작발표회 때 "대금협주곡 꿈마당"이 초연되었다. 1995년 3월 16일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제57회 정기연주회 때, 4월 13일 제58회 정기연주회 때, 그리고 10월 10일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창단30주년 기념연주회 때 지휘했고, 1995년 10월 28일 국악실내악회 한솔 제7회 정기연주회 때 "하늘나라 꿈나라"를 발표하였다.

작품으로 "해 뜨는 소리"(1991)·"영계"(靈界 1978)·"은빈주"(銀彬珠 1994) 등이 있고, 연극음악으로 "맹진사댁 경사"·"태" 등이 있다. 작품집으로 『국악작곡집』(1976)이 있다. 신국악의 작품으로 1966년 국립국악원 신국악 공모의 가작(佳作) "연하일휘지곡"(煙霞日輝之曲), 그리고 "창회"(暢懷 1967)·"만·중·삭"(慢·中·數 1969)·"대금과 성악을 위한 협주곡 새벽"(1971)·"가야금과 대금을 위한 아홉 가락의 유음"(流音 1973)·"관에 의한 아홉 각(角)의 묘음"(描音 1974) 등이 있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188~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