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관

고수관

[ 高壽寬 ]

요약 성악가(판소리). 순조(1800~1834)·헌종(1834~1849) 때 판소리명창. 충청남도 해미(海美) 출생.

(廉啓達)의 소리를 많이 본받았다. 목소리가 매우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딴 목청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은 남이 따를 수 없었다고 하여 '딴청일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인 중 ""는 염계달의 소리제를 받아서 짠 으로 되어 있는데 구수하기 이를 데 없다.

(申在孝)도 그의 "광대가"(廣大歌)에서 고수관의 구수하고 은근한 을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 곧 백낙천(白樂天 772~846)과 비기고 있다.

그의 이름은 순조(1800~1834) 때 (申緯)가 1826년(순조 26)에 쓴 「」(觀劇詩) 중 당시의 판소리명창 고·송·염·모(高·宋·亷·牟) 즉 고수관··염계달·과 함께 언급되었다. 1827년(순조 27)에 작성된 「」(八道才人等狀)에 나오는 명창이다. 추천목에 뛰어난 고수관의 더늠은 춘향가 중 "자진사랑가"에 전한다.

송흥록·모흥갑·염계달의 후배인 고수관은 염계달의 창법을 많이 모방했고, 춘향가를 잘 불렀다. 만년에는 공주(公州)에 거주하였다. (聲音)이 아주 미려(美麗)하고, 목청을 자유자재로 발휘할 수 있었고, 문식(文識)이 꽤 있어 소리 좌석의 광경에 맞게 임기응변해서 소리를 잘 불렀다.

당시 대구감사(大邱監司)의 도임연(到任宴)에 불려간 고수관은 춘향가 중 (妓生點考)하는 대목에서 그 당시의 이름을 시적(詩的)으로 만들어 불러서 좌석을 경탄케 했다고 한다.

갑신년(甲申年) 즉 1824년(순조 24) 그는 (孫碹出)·송인영(宋人英)·(河殷潭) 등과 함께 「」(完文等狀八道才人)을 작성하여 호조(戶曹)에 올렸다. 이 등장은 「팔도재인등장」과 함께 판소리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춘향가 중 자진 "사랑가"는 그의 더늠으로 후세에 전한다. ·이 방창(倣唱)한 사랑가는 정노식(鄭魯湜)의 『朝鮮唱劇史』에 전한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53~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