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석

경석

[ 磬石 ]

요약 편경(編磬)·특경(特磬) 제작 때 쓰이는 옥돌의 일종. 일명 경(磬)돌·옥돌.

1425년( 7) 경석은 경기도 (南陽)에서 발견됐으므로, 당시 (樂學別坐) (朴堧)이 남양의 경석으로 만든 한 틀을 1427년(세종 9) 임금에게 보여 드렸다. 1426년(세종 8)부터 1428년(동왕 10) 2년 동안 · 등의 제례의식에서 사용된 편경과 모두 합해 528매가 제조됐다. 경석은 남양 이외 평안도 성천(成川)과 함경도 서천(舒川)에서도 발견됐다고 하지만 남양의 경석이 질적으로 가장 우수했기 때문에, 조선후기에도 남양에서 경석을 캐내어 을 제작하였다.

1710년(숙종 36) 및 1741년(영조 17) (樂器造成廳)이 설립됐을 때, 전례(前例)대로 남양의 경석을 캐다가 편경을 제작했다.

1744년(영조 20)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의 화재로 인하여 불타버린 악기를 제작하기 위해 인정전악기조성청(仁政殿樂器造成廳)이 설립됐을 때, (李彙晉)과 (李延德)의 감독 아래 남양의 경석으로 두 틀의 편경을 1745년에 제작했다.

1777년(정조 1) (景慕宮樂器造成廳)의 제조 김한기(金漢耆)와 (鄭尙淳) 및 (申得獜)과 (林成柱)의 지도 아래 경모궁제례 때 사용할 편경 두 틀을 남양의 경석으로 제작했다.

또한 1803년(순조 3) (社稷樂器造成廳)의 설립 때에도 감조전악(監造典樂) (申光三)·(金應三)·박보완(朴輔完)의 감독 아래 남양의 경석으로 편경 17매를 제작했다.

경석 관련의 이 모든 기록은 『』(仁政殿樂器造成廳儀軌) 및 『』(景慕宮樂器造成廳儀軌) 그리고 『사직악기조성청의궤』(社稷樂器造成廳儀軌)에 전한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1.141~42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방송, 27~29쪽

참조어

경돌(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