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환

강용환

[ 姜龍煥 ]

요약 성악가(판소리), 서편제 판소리명창. 전라북도 무안(務安) 출생. 강태홍의 아버지.
출생 - 사망 1865년 ~ 1938년

고종(1863~1907) 때 (李捺致)의 문하에서 를 전수했고, 계면(界面)을 주장한 이다. 이날치의 문도(門徒)로 서파(西派)의 법제(法制)를 계승한 강용환은 계면을 주장했고, 70여 세까지 꾸준히 노력하여 유명한 명창이 되었다.

1900년에 상경하여 (光武臺)·(協律社)의 공연에 참가하여 중 ""를 잘 불러 이름을 떨쳤다. 특히 을 창안하여 김창환(金昌煥)과 함께 (圓覺社) 창극운동의 주역을 담당했고, 및 춘향가를 창극화했을 뿐 아니라, 최초의 본격적인 창극으로 알려진 "최병두타령"을 창극화했다.

1909년 원각사의 폐지 이후 김창환 명창이 조직한 김창환협률사(金昌煥協律社)라는 사설 유랑창극단에서 그는 유성준·김채만·박지홍·공창식 등 50여 명의 단원과 함께 주로 지방에서 공연활동을 전개하다가 1910년 한일합방(韓日合邦)의 소식을 들은 후 경상도 남해(南海)공연을 끝으로 해산하였다.

1912년 광주협률사가 창립되자 을 연출했다. 말년에는 후진을 양성했는데 전일도·박종원·신용주 같은 명창을 배출하였다. 1998년 12월 22일 전남 무안군민회관에서 ·명창 강용환·강태홍·강남중 선생 추모공연이 열렸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