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上都) 유적

상도(上都) 유적

[ Site of Xanadu , 上都遺跡 ]

요약 중국 네이멍구자치구에 있는 원(元)나라의 유적으로서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상도유적

상도유적

국가 중국
지정일 2012년
분류 문화
테마분류 문화유산
소재지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좌표 N42 21 28.8 E116 11 6.46
면적 2만 5131㏊(완충지역 15만 722㏊)

중국 중부의 시린궈러멍[錫林郭勒盟]에 있는 13~14세기 나라의 유적을 가리킨다. 북부 아시아의 유목문명과 농경문명이 융합된 모습을 보여주는 유적으로서 1964년 네이멍구자치구의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1988년에는 국가급 문화재인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2008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포함되었으며, 2012년 3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실사 평가 보고서를 승인하는 과정을 거쳐 같은 해 6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36차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청장[澄江] 화석유적과 함께 세계유산(문화)으로 등재되었다. 등재된 문화유산의 면적은 2만 5131ha이며, 주변의 완충지역(Buffer zone) 면적은 15만 722ha이다.

상도(上都)는 1256년 원나라의 시조 [忽必烈]가 한족 책사인 유병충(劉秉忠)에게 명하여 건설한 수도로서 처음 명칭은 개평(開平)이었으나 후에 상도로 개칭되었다. 의 《》에 소개된 뒤 전설적인 '부(富)의 도시'로 구전되었는데, 몽골어 사나두(šanadu)의 영문 표기인 재너두(Xanadu)는 이상향을 뜻하는 도원경(桃源境)으로 번역된다. 1273년까지 원나라의 첫 수도였으며, 1274년 베이징[北京]으로 천도한 뒤로 1364년까지 원나라 황제가 여름에 머무는 제2의 수도 역할을 하였다. 원나라가 멸망한 뒤인 1430년 폐허로 버려져 지금은 대부분 초지로 뒤덮여 있으며, 성벽과 사원, 무덤군, 유목민의 야영지, 수로(水路)와 톄판강 운하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도시는 중국의 풍수리지 전통에 따라 북쪽으로 산을 등지고 남쪽에 강을 두고 남북축을 중심으로 건설되었다. 둘레 약 9㎞의 정방형으로 건설된 도성은 외성(外城)과 내성(內城), 궁성(宮城)의 3중 구조이며, 궁성이 모든 건축물의 중심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외성의 북반부에는 어원(御苑), 서남부에는 시가(市街), 서문 밖에는 큰 거리가 조성되었다. 외성의 동남쪽에 건설된 내성의 네 모퉁이에는 대룡광화엄사(大龍光華嚴寺)·건원사(乾元寺)·화엄사(華嚴寺)와 공묘(孔廟)가 건축되었다. 궁성은 내성의 중축선에서 조금 북쪽으로 치우친 곳에 세워졌고, 면적은 베이징 고궁(故宮)의 절반 정도였다. 궁성에는 대안각(大安閣)·승응궐(承應闕)·의천전(儀天殿)·연향각(連香閣)·수창당(壽昌堂)·예사전(睿思殿)·인춘각(仁春閣)·융덕전(隆德殿)·청녕전(清寧殿) 등의 건축물이 세워졌다. 성의 서북쪽에는 성종 대덕(大德) 연간에 곽수경(郭守敬)이 설계하여 건축한 수로 유적이 있는데, 이는 중국 북방 초원지대에 완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수리(水利) 시설이다.

쿠빌라이 칸은 이 도시를 기반으로 원나라를 세워 1세기 동안 중국 대륙을 지배하고 아시아 전역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13세기 이곳에서 불교와 도교 사이에 일어난 종교 분쟁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 티베트 불교가 전파되었으며, 그 문화와 전통이 오늘날까지도 여러 지역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도시 유적은 한족의 도시계획에 원 왕조의 몽골식 생활양식에 필요한 정원과 경관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몽골 유목민의 문화와 한족의 문화를 융합하려 한 독특한 시도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류사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는 뛰어난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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