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대성당(가톨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가톨릭)

[ Westminster Cathedral ]

요약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가장 큰 가톨릭 교회이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국가 영국
소재지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빅토리아 거리
건립일 1895년 착공, 1903년 완공
설계자/건축가 존 프란시스 벤트리(John Francis Bentley)
건축양식 비잔틴 양식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시 빅토리아 거리(Victoria Street)에 위치한 가톨릭 성당이다. 웨스트민스터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고, (England)와 (Wales)에서 가장 큰 가톨릭 교회로 영국 가톨릭의 중심지이다. 흔히 영국 왕의 대관식이나 왕실의 결혼식 등으로 유명한 영국 (聖公會)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Westminster Abbey)과 혼동되곤 한다.

(Henry VIII, 재위 1509~1547)가 와 결별하고 성공회를 설립한 후 영국에서 가톨릭 교회의 활동은 제약을 받았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영국 성공회와 로마 교황청의 관계가 개선되었고, 1850년 와이즈맨(Nicholas Wiseman, 1802∼1865) 추기경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주교로 다시 취임하였다. 1865년 첫 번째 웨스트민스터 대주교였던 와이즈맨 추기경이 죽은 후 그를 기념해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설립이 추진되어 모금이 이루어졌다.

와이즈맨의 뒤를 이어 두 번째 웨스트민스터 대주교가 된 매닝(Henry Edward Manning, 1808∼1892) 추기경은 1884년에 성당을 세울 토지를 매입했다. 그곳은 원래 1618년부터 1884년까지 토트힐 필드 교도소(Tothill Fields Bridewell)가 있던 자리였다. 그러나 1867년 헨리 크루톤(Henry Clutton)과 1892년 바론 폰 헤르스텔(Baron von Herstel)이 입안한 설계가 승인을 얻지 못하면서 건축은 지연되었고, 결국 세 번째 웨스트민스터 대주교인 본(Herbert Alfred Vaughan, 1832∼1903) 추기경 때인 1895년에야 존 프란시스 벤틀리(John Francis Bentley)의 설계로 건축이 시작되었다. 벤틀리가 죽은 후인 1903년 건설이 완료되어 성당은 문을 열었으나, 예산 부족으로 실내 장식은 벤틀리의 당초 계획대로 완성되지 못했다. 그리고 완성되지 못한 교회는 봉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교회법의 규정에 따라 성당의 봉헌식도 1910년 6월 28일까지 미루어졌다.

이 성당은 종교개혁 이후에 영국에 세워진 첫 번째 가톨릭 교회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1792년에 런던의 소호 광장(Soho Square)에 성 패트릭 성당(St. Patrick's Church)이 설립되었던 사례가 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잉글랜드 이외의 지역에서는 1755년과 1788년에 스코틀랜드의 뱀프셔(Banffshire)에 두 곳의 가톨릭 성당이 세워진 사례도 있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네오-비잔틴(Neo-Byzantine) 양식으로 세워져 매우 화려하고 특색 있는 외관을 하고 있다. 전면에 90미터 높이의 커다란 시계탑이 솟아 있으며, 입구의 아치와 기둥의 조합도 화려하고 아름답다.

1995년 영국 여왕인 가 이곳을 방문해 예배에 참여했는데, 이것은 헨리 8세 이후 영국의 왕들 가운데 현역 군주로는 처음으로 가톨릭 의식에 공식 참가한 것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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