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카

아바카

[ Abaqa ]

요약 일한국의 제2대 칸(Khan, 재위 1265년~1282년). 재위 기간 동안을 거의 킵차크한국과의 내전으로 보냈고 계모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우호적이 되어 이슬람의 맘루크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면서 유럽 기독교 국가와의 연대를 모색하였다.
출생-사망 1234 ~ 1282

훌라구칸(Hulagu Khan)의 아들. 계모 도쿠즈(Doquz)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몽골인의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하였으며 여러 종교에 대하여 관대하였다. 아바카 자신은 불교도였지만 계모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에 매우 우호적이 되었다. 비잔티움 황제 미카일 8세(Michael Ⅷ)의 딸, 마리아  팔라이올로지나(Maria Palaiologina)와 결혼했다. 1265년 도쿠즈가 사망하자 몽골의 정신적 지도자의 역할은 마리아(Maria)에게 넘어갔다. 당시의 동전에는 기독교 십자가와 성경문구가 들어가 있다. 몽골인들이 좋아한 서북지방의 초지 타브리즈(Tabriz)를 일한국 수도로 정착시킨 것도 아바카의 결정이다.

아버지 훌라구 시대부터 시작된 킵차크한국과의 싸움은 아바카 재위 시절까지 계속되었는데 이 싸움은 킵차크한국이 이집트 맘루크와 손 잡고 맘루크가 지배하고 있는 시리아를 아바카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이 적대 관계는 1267년 킵차크한국의 베르케 칸(Berke Khan)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쿠빌라이 칸이 이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영향력을 발휘, 킵차크한국의 칸(Khan) 몽케 테무르(Monke Temur)는 아바카의 영토에 대한 침공을 멈추었고 일한이 차가타이(Chagathai) 바라크(Baraq)를 패퇴시켰을 때는 사절을 보내 축하하기도 하였다. 

아바카는 이슬람교도인 맘루크에 대항하여 서방의 협조를 구한 몽골 통치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1267~1268년 교황 클레멘스 4세에 사절을 보내 프랑스-몽골 연맹을 제안하였고 1276년과 1277년에도 유럽에 사절을 보냈으나 구체적인 결과는 얻지 못하였다.

안티오크(Antioch)가 맘루크 바이바르스(Baibars)에게 함락되자 영국의 에드워드 1세(Edward Ⅰ)가 1271년 아크레(Acre)에 도착하여 몽골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응하여 아바카는 셀주크 아나톨리아(Seljuk Anatolia) 점령군 중에서 1만 명의 몽골 기병을 뽑아 사마가르(Samagar)를 대장으로하여 시리아로 파병하였다.

1277년 맘루크 지도자 바이바르스가 죽자 1280~1281년 아바카는 시리아 재침입을 추진하고 아크레에 사신을 보내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그때 십자군은 이미 맘루크와 10년 휴전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었다. 1281년 10월 몽골 군대 5만과 아르메니아군 3만, 그루지야인, 그리스인, 마르카브 기사단 등이 총출동하여 이슬람교도 칼라운(Qalawun)에 대항하여 제2차 홈스전쟁(2nd Battle of Homs)을 벌였으나 양쪽에 막대한 피해만 입히고 뚜렷한 승자 없이 끝났다. 아바카는 1282년 하마단(Hamadan)에서 사망하였는데 알코올 중독이 사인으로 추정된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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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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