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의 중국사상

근세의 중국사상

송대(宋代)에는 정치의 중심적 담당자가 세습적인 귀족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으로 과거에 급제한 신흥(新興) 인재들이었다. 사상계가 활발해진 것은 이런 사실과 관계가 있다. 당나라 한유도 이러한 신흥 인재였다. 여기서는 불교의 철리에 대항하여 유교의 입장에서 새로운 인생철학을 확립하는 것이 주안점이 되고, 그것은 송학 또는 이학(理學)이라 불리었다. 그것은 11세기, 북송(北宋)의 주염계(周濂溪),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형제, 그리고 장횡거(張橫渠) 등의 사상가에 의해 이(理)의 철학, 기(氣)의 철학 또는 화엄(華嚴)의 철학을 응용한 근본의 이와 현상을 일치시킨 철학 등으로써, 형이상학적인 사상에 입각한 인생철학, 특히 심성(心性)의 이론이 발전하여, 그것들이 마침내 주자(朱子)에 의해 대성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주자학(朱子學)으로, 우주 존재의 근본은 태극(太極)으로서의 이(理)라는 설이다. 그러나 존재가 현상(現象)하기 위해서는 기(氣)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렇게 하여 세계는 이와 기에 의해 성립되었는데, 인간에 있어 이는 본연의 성(性)으로서 선(善) 그 자체이지만, 기는 그 물질성에 의해 정욕(情欲)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으로서의 수양은 이 인욕(人欲)을 누르고 천리(天理)를 발휘하는 일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내적 심성을 가다듬어 내성(內省)하는 동시에 내외를 관철하는 이를 파악하기 위하여 외계의 사물 하나하나에 관한 이를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이 방법을 거경궁리(居敬窮理)라고 한다. 이와 같은 주자학의 흐름 외에 북송의 구양 수(歐陽修)의 나 왕안석(王安石), 남송(南宋)의 영가학파(永嘉學派) 등에서 볼 수 있는 실리적 공리주의 사상 등도 있었으나, 송대는 대체로 보아 존재의 근원과 심성의 본질을 생각하는 내성적 ·사변적 사상이 지배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주자학에 대항하는 사상으로 육상산(陸象山)의 심학(心學)이 있다. 그 사상은 마침내 명대(明代) 중기의 왕양명에게서 완성되었다. 주자에게서는 이가 외계의 사물에도 객관적으로 널리 존재하는 것이었으나, 왕양명에게서는 심(心)이 바로 이(理)로서 심 외에는 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심을 인지(認知)함으로써 이가 생겨난다. 뿐만 아니라 그 지(知)는 행(行), 즉 체험을 통해서만 확실해진다. 즉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주자학의 형식화에 따른 사회나 정치의 질서 원리로서만 밖으로부터 강요되는 이의 성격을 바꾸어 자유로운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하려고 하는 움직임이었다. ‘양지(良知)를 이루다’ 즉 본래적인 심정을 충분히 발휘하는 일, 그러기 위해 ‘사상(事上)에서 마련(磨練)한다’고 하는 수양론(修養論)에 의해 양명학은 완성되었다. 명말(明末)이 되면서 이 주관적 경향은 한층 심해져 이탁오(李卓吾)처럼 인욕(人欲)을 긍정하고 거짓 없고 솔직한 동심(童心)을 존중하여 기성질서에 반역하는 사상도 생겨났다. 그러나 한편 양명학의 실천적 면을 이어받아 17세기 명말 청초(明末淸初)에는 일종의 실학적 경향이 활발하였다. 황종희(黃宗羲)나 고염무(顧炎武)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러나 이 경향은 청조(淸朝)의 한인(漢人) 압박으로 세력을 잃고 훈고고증(訓詁考證)의 학술로 바뀌어 사상계에서는 크게 세력을 떨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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