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카가 요시테루

아시카가 요시테루

[ 足利義輝(족리의휘) ]

요약 일본 무로마치[室町] 시대에 바쿠후[幕府]와 쇼군[將軍]의 권위를 회복하려고 진력한 제13대 쇼군[將軍].  바쿠후를 배후 조정하려는 마쓰나가 히사미치[松永久通] 등이 일으킨 에이로쿠[永祿]의 변에서 전사하였다.
출생-사망 1536 ~ 1565

일본 무로마치[室町]시대 제12대 쇼군[將軍] 아시카가 요시하루[足利義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요시하루는 간레이[關領] 호소카와 하루모토[細川 晴元]와 대립하여 자주 싸움을 벌여 연전연패하여 사카모토[坂本]로 달아나고 교토[京都]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1546년 요시하루는 11세에 불과한 요시테루에게 쇼군[將軍] 자리를 넘기고 2년 뒤 1548년에 하루모토[晴元]와 화해하고 교토[京都]로 돌아오며 하루모토[晴元]는 요시테루의 쇼군 취임을 인정하였다. 

이 즈음 하루모토의 가신이던  [三好長慶]가 주군을 저버리고 호소카와 우지쓰나[細川氏綱]편을 들며 기나이[畿內]에서 세력을 넓혀, 요시하루-요시테루 부자와 하루모토는 재차 사카모토로 물러나게 되며 1550년 요시하루는 사카모토에서 사망하였다.

1552년 우지쓰나를 간레이[關領]로 인정한다는 조건하에 나가요시와 화평을 맺고 교토로 돌아오고, 이듬해 다시 하루모토와 손잡고 나가요시와 싸워 또다시 패배, 사카모토로 달아나게 되었다.

1558년 다시 나가요시와 화해하고 교토로 돌아오지만 또 나가요시와 다투어 처음에는 롯카쿠 요시카타[六角義賢]의 지원을 받은 요시테루가 우세했으나 나가요시의 동생인 미요시 요시카타[三好義景]의  분전, 또 롯카쿠[六角]로부터의 지원 중단 등으로 인해 결국 교토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 후 나가요시와 화평을 체결하고 요시테루는 교토[京都]로 돌아오지만, 나가요시는 바쿠후[幕府]의 요직을 얻게 되고 슈리다이후[修理大夫]에도 추천되어 바쿠후의 실권까지 잡게 되어 요시테루는 나가요시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셈이 되었다. 

그래도 요시테루는 바쿠후의 권력과 쇼군 권위의 부활을 위해 왕성한 정치적 활동을 전개하여 다이묘[大名]들 사이에 쇼군의 존재를 부각시키는데 진력하여 [織田信長], [上杉謙信] 등이 교토로 와서 요시테루를 알현하고 [大友宗麟]은 총을 헌상하는 등, 여러 다이묘가 쇼군의 권위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나가요시가 죽고 바쿠후의 배후를 조종하려던 마쓰나가 히사미치[松永久通]와 미요시 산닌슈[三好三人衆]가 1565년 5월 요시히데[義秀]를 새 쇼군으로 옹립, 요시테루의 본거지인 니죠고쇼[二條御所]를 침공함으로서 에이로쿠[永祿]의 변을 일으켰다.

요시테루는  검성[劍聖] [上泉信綱], 쓰가하라 보쿠텐[塚原卜傳] 등에게 사사한 검술의 달인으로서 이에 맞서 싸웠으나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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