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당

양성당

[ 養性堂 ]

요약 충청남도 논산시(論山市) 연산면(連山面) 임리(林里) 74번지에 있는 조선 중기 학자 김장생(金長生)의 서재이다.    
돈암서원 양성당

돈암서원 양성당

조선 중기 학자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서재로 사용했던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장대석으로 2단의 기단을 쌓고 4각추 형태의 초석 위에 사각 기둥을 세우고 홑처마 팔작지붕을 올렸다. 5칸 모두 각각 방을 들이고 가운데 3칸 앞면에는 전퇴를 두었다. 방마다 띠살 분합문을 달았으며 양 협칸의 창호 밑에는 머름(미닫이 문지방 아래나 벽 아래 중방에 대는 널조각)을 달았다. 원래 연산면(連山面) 임리(林里) 숲말에 있던 것을 사계천이 홍수로 범람하는 바람에 1880년(고종17)에 현재의 자리인 논산 돈암서원(論山遯巖書院) 앞으로 옮겨 세웠다.

김장생은 본관 광산(光山),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이다.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계휘(繼輝)의 아들이며 집(集)의 아버지이다. 창릉참봉(昌陵參奉)과 평시서봉사(平市署奉事) 등을 거쳐 정산현감(定山縣監), 안성군수, 익산군수, 철원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형조참판(刑曹參判)의 자리에 올랐다. 인조(仁祖) 때 정원군(定遠君)의 추숭논의(追崇論議)가 일어나고 북인(北人)이 득세하자 연산(連山)으로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아들 집과 함께 예학(禮學)의 기본적 체계를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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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 양성당

돈암서원 양성당 출처: Xav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