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타크의 집

에스타크의 집

[ Houses at L'Estaque ]

요약 프랑스 화가 조르주 브라크의 《에스타크 풍경》 연작 중 하나로 1908년 살롱 도톤에 출품된 이 작품에 대해 마티스가 작은 입방체(cube)들의 집합이라고 평한 데서 입체주의(큐비즘)라는 용어가 시작되었다.
작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종류 캔버스에 유채
크기 73x60cm
제작년도 1908년
소장 스위스 베른 미술관

조르주 브라크는 1906년부터 1908년까지 매년 여름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에스타크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다. 에스타크 지방은 이미 1870년대에 후기인상주의 화가인 세잔이 정착하여 많은 대작을 남긴 장소였다. 브라크는 1907년 '세잔 회고전'을 통해 큰 감동을 받았고, 아폴리네르의 소개로 피카소의 화실을 방문하여 그의 대작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보고 자신이 추구하려는 새로운 회화의 길을 모색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이듬해부터 큐비즘의 조형혁명을 시작했다. 

1908년 여름, 브라크는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에 대한 열망을 안고 에스타크로 떠났다. 《에스타크의 집》은 브라크가 그해 여름동안 머물며 그린 에스타크 풍경 연작 가운데 하나이다. 세잔은 말년에 《생트빅투아르 산》을 그리며 "모든 자연은 원통, 구, 원추형으로 환원된다"고 주장했는데, 이 작품은 그의 이론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자연을 해체시키고 새로운 입체적 구성을 시도했다. 그 결과 나무와 집 같은 풍경은 기하학적인 도형의 형태로 바뀌어 색다른 풍경화가 되었다. 

파리로 돌아온 브라크는 그해 가을 《에스타크의 집》을 비롯한 에스타크 풍경 연작을 살롱 도톤에 출품했다. 당시 살롱전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마티스는 브라크의 그림을 보고 작은 입방체(cube)의 집합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이 실험적인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작품은 단 두 점만 입선되고 《에스타크의 집》을 포함하여 다섯 점은 낙선되고 말았다. 이에 불만을 품은 브라크는 작품을 모두 회수해 당대 유명한 화상이었던 칸바일러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자연을 기하학적 기법으로 단순화시키고, 원근법을 배제하고, 사물을 평범한 공간이 아닌 입체적 공간에 투사한 에스타크 풍경은 브라크의 입체주의(큐비즘)을 향한 기념할 만한 작품이다. 비평가 루이 복셀은 브라크의 작품에 대한 경멸의 의미로 이러한 그의 기법을 '입체' 혹은 '입체주의'라는 용어로 정의했으나, 장 폴랑은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만져보듯이 그린" 즉 촉각적 특징을 지적했다. 그리고 아폴리네르는 "현대 예술의 모든 새로운 점들을 검증했고 계속 검증해 나간 철저한 검사관의 장인의식"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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