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오수혁 정려

효자 오수혁 정려

[ 孝子 吳壽爀 旌閭 ]

요약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 152-4번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 1997년 6월 5일 공주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효자 오수혁 정려

효자 오수혁 정려

지정종목 향토문화유산
지정일 1997년 6월 5일
소재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소정길 10(기산리 152-4)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정려
크기 정면 3칸, 측면 1칸

1997년 6월 5일 공주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오수혁은 본관이 해주(海州)이며, 1737년(영조 13) 지금의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확인하고, 병세가 위독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어머니 입에 넣어드림으로써 여러 날 목숨을 연장시켰다고 전한다. 1782년(정조 6) 통훈대부(通訓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고 명정을 받아 정려를 세웠는데, 1894년(고종 3) 동학농민운동 때 불에 타 없어졌다. 이후 1964년 후손이 정려가 있던 옛터에 오수혁의 현손인 오시영(吳時泳)과 5대손인 오용근(吳用根)의 효행비를 세웠고, 1974년 정려각을 중건하면서 오수혁의 정려비도 함께 세웠으며, 1998년에 보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자연석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4면에 홍살을 둘렀다. 정려 정면에 '오문양세효자비(吳門兩世孝子碑)'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정려 안에는 1964년 이규헌(李圭憲)이 쓴 중건기(重建記)가 걸려 있다. 오수혁의 정려비는 정려 안의 왼쪽에 있는데, 앞면에 '효자증통훈대부동몽교관해주오공수혁지려(孝子贈通訓大夫童蒙敎官海州吳公壽爀之閭)'라고 새겨져 있다. 정려 중앙에는 오문양세효자비(吳門兩世孝子碑)가, 오른쪽에는 광산김씨절행비(光山金氏節行碑)가 세워져 있다. 정려 앞에는 1998년에 세운 연혁비(沿革碑)가 있다.

참조항목

기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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