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

정인

[ 鄭寅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한 때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 당하였으나 광해군 때 복직되어 병조정랑(兵曹正郞)과 사헌지평(司憲持平)을 지냈다.
출생-사망 1561 ~ ?
본관 초계(草溪)
자청(子淸)
국적 조선
활동분야 관료, 문신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자청(子淸)이다. 숙겸(淑謙)의 손자이며 희천(希天)의 아들이다. 일찍부터 풍수(風水)와 역학(易學), 율려(律呂)에 정통한 곤재 정개청(困齋 鄭介淸)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1591년(선조 24)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00년(선조 33)에 중국 장수를 호위하는 접반관(接伴官)에 임명되었으나,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한다는 탄핵을 받아 병조좌랑(兵曹佐郞)의 자리에서 파직 당하였다. 1606년(선조 39)에 복직되어 예조좌랑(禮曹佐郞)에 등용되었으며 이어서 강원도사(江原都事)를 지냈다.

한 때 사람됨이 용렬하며 사리에 어둡고 세상물정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사헌부(司憲府)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다.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1611년(광해군 3)에 예조판서로 있던 이이첨(李爾瞻)의 추천을 받아 병조정랑(兵曹正郞)에 등용되었으며 이어서 1615년(광해군 7)에는 사헌지평(司憲持平)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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