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 묘

윤증 묘

[ 尹拯墓 ]

요약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 산11-11번지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윤증(尹拯)의 묘.
윤증 묘

윤증 묘

조선 후기의 학자로 당시 정국을 전횡하던 노론(老論) 세력을 비판하였던 윤증의 묘이다. 1714년(숙종 40) 그가 사망하자 숙종이 애도하는 조사를 지었으며, 1723년(경종 3) 9주기에는 승지가 파견되어 치제(致祭)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문성(文成)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묘소는 1746년(영조 22) 원래의 위치에서 이산(尼山) 두사촌(杜寺村)으로 이장되었다가 1765년(영조 41)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고 한다.

묘소에는 비석 하나만 있고, 문인석이나 무인석 또는 석주나 석등 같은 장식물은 없다. 비석에는 '유명조선국징사파평윤공휘증지묘(有明朝鮮國徵士坡平尹公諱拯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본래 묘소에서 세일사(歲一祀)를 지내다가 근래에는 계룡면 향지리의 파평윤씨 노종공파 종중 재실에서 거행하고 있다. 윤증은 이밖에 홍성의 (龍溪書院), 논산의 노강서원(魯江書院), 영광의 용암서원(龍巖書院) 등에서 제향되고 있다.

참조항목

윤증, 향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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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 묘 조선 후기의 유학자 윤증의 묘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당시 정국을 전횡하던 송시열의 노론(老論) 세력을 비판하며 소론을 이끌었던 윤증의 무덤으로 1714년(숙종 40) 그가 사망하자 숙종이 애도하는 조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묘소는 1746년(영조 22) 원래의 위치에서 1765년(영조 41)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 묘소에는 비석 하나만 있고, 문인석이나 무인석 또는 석주나 석등 같은 장식물은 없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