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맹묘와 신도비

구사맹묘와 신도비

[ 具思孟墓-神道碑 ]

요약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金谷洞)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구사맹(具思孟)의 묘와 신도비.
구사맹 묘

구사맹 묘

구사맹(具思孟, 1531~160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중추부판사·지경연사를 지냈으며, 인헌왕후(仁獻王后)의 아버지로 능안부원군(綾安府院君)에 봉해졌다.

묘역은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군장리 산93번지에 있으며, 청주부부인 한씨, 평산부부인 신씨와 합장묘이다. 흙으로 된 나지막한 담이 둘러져있으며, 장대석(長臺石)은 없고 형태만 남아 있다. 묘소에는 묘표,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망주석(望柱石), 문인석(文人石) 등이 배치되어 있다. 묘표는 받침돌에 월두형(月頭形) 비신(碑身)이며, 봉분 앞에 화강암으로 된 상석과 그 앞에 향로석이 있다. 망주석의 크기는 작으며, 팔각형의 받침대를 갖추었다. 문인석은 금관조복(金冠朝服) 양식이며 눈을 감고 입을 꾹 다물고 있고 손의 표현이 섬세하다.

묘 아래에 있는 신도비는 받침돌과 비신이 붙어있으며 비석의 머리에는 용의 모양이 새겨져 있다. 1635년(인조13웠)에 세웠으며, 비문은 이식(李植)이 지은 후, 오준(吳竣)이 글을 쓰고 김광현(金光炫)이 글자를 쓰고, 김경일(金敬一)이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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