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몽찬
[ 高夢贊 ]
- 요약
조선 후기의 학자로 벼슬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여 성리학뿐 아니라 성문(星文), 지지(地誌), 율력(律曆), 산수(算數) 등 다방면에 통달하였다. 시문집 《금주집 錦洲集》이 전한다.
출생-사망 | 1793 ~ 1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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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개성(開城) |
자 | 이수(理叟) |
호 | 금주(錦洲) |
국적 | 조선 |
활동분야 | 학문 |
주요저서 | 《금주집 錦洲集》 |
본관은 개성(開城)이며 자는 이수(理叟), 호는 금주(錦洲)이다. 현감을 지낸 인계(仁繼)의 후손으로 보관(補寬)의 아들이다. 문겸(文謙), 치겸(致謙), 숙겸(淑謙)의 세 아들을 두었다. 정필규(鄭必奎, 1760~1831)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나 과거가 공정하게 시행되지 못함을 알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성리학에 통달하였으며, 그 외에 성문(星文), 지지(地誌), 음양(陰陽), 복서(卜筮), 율력(律曆), 산수(算數) 등에도 막힘이 없었다. 그가 지은 《금주집 錦洲集》에는 군제, 전부(田賦), 공거(貢擧) 등 당시의 시무에 관한 글도 있다. 큰아들 문겸이 1892년(고종29)에 그가 쓴 글을 묶어 간행한《금주집 錦洲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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