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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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仁溪書院 ]

요약 경상북도 봉화군 재산면 현동리에 있던 서원으로,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 진사(進士) 김언적(金彦迪), 현감(縣監) 김팔원(金八元), 현감(縣監) 정사성(鄭士誠)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경상북도 봉화군 재산면 현동리에 있었다. 상촌 김자수(?~?), 진사 김언적, 현감 김팔원(1524~1589), 현감 정사성(1545~1607)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조 정조 때 건립하였다. 그 후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오다가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06년 안동 옥계(玉溪)로 옮겨 짓고 건물 터만 남아 있다.

김자수는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 자는 순중(純仲), 호는 상촌(桑村)이다. 공민왕·공양왕 때 관직을 지내고, 전교시판사(典校寺判事)·좌상시(左常侍)·형조판서에 이르렀으나,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조선 개국 후 태종 때 형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고려가 망한 것을 비관하여 자결하였다.

김팔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강릉, 자는 순거(舜擧)·수경(秀卿), 호는 지산(芝山)이다. 명종 때 관직을 지내며, 조목(趙穆)·구봉령(具鳳齡) 등과 학문을 닦았고, 조목과 〈인심도심도(人心道心圖)〉를 만들었다.

정사성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명(子明), 호는 지헌(芝軒)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어용(御容)을 보존한 공으로 내섬시주부에 임명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곽재우와 함께 화왕산성에서 왜군과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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