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뇌경
[ 鄭雷卿 ]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왕을 호종하였으며, 볼모로 청나라에 끌려가는 소현세자를 수행하였다. 청나라에 빌붙어 횡포를 부리던 정명수 등을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다가 청나라 관헌에게 처형당하였다.
출생-사망 | 1608 ~ 1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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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온양(溫陽) |
자 | 진백(震伯) |
호 | 운계(雲溪) |
시호 | 충정(忠貞) |
국적 | 한국 |
활동분야 | 정치 |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자는 진백(震伯)이고, 호는 운계(雲溪)이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1630년(인조 8)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1632년 부수찬에 제수되었으나 을사사화 때 많은 사람을 해친 정순붕(鄭順朋)의 현손(玄孫)이라 하여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인조의 두둔으로 전적·공조좌랑·예조좌랑·병조좌랑·정언·지평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636년 교리로 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모시고 남한산성으로 피란하였다. 이듬해 사서로 있을 때는 볼모가 되어 청나라 선양[瀋陽]으로 가는 소현세자(昭顯世子)를 수행하였다. 1639년 조선인으로서 통역을 하며 청나라에 빌붙어서 횡포를 부리던 정명수(鄭命壽) 등을 처벌할 것을 청나라에 요구하였다가 도리어 청나라 관헌에게 처형당하였다. 도승지·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후에 찬성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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