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항

이지항

[ 李之恒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627년(인조 5) 식년시에 생원으로 합격하였고, 선교랑(宣敎郞)에 제수(除授)된 뒤 1633년(인조 11) 식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 홍산현감(鴻山縣監),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우승지(右承旨), 대사간(大司諫)등을 역임하였다.
출생-사망 1605 ~ 1654
본관 전주(全州)
월여(月如)
활동분야 정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월여(月如)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이목(李楘)이다.

1627년(인조 5) 식년시에 생원으로 합격하였고, 선교랑(宣敎郞)에 제수(除授)된 뒤 1633년(인조 11) 식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承文院) 가주서(假注書)에 제수(除授)되었다. 1637년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에 승진되었고, 그 후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로 옮기었다가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거쳐, 그해 9월 홍산현감(鴻山縣監)으로 나갔다. 1643(인조 21)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사간원사헌납(司諫院獻納)을 역임한 후 이듬해 병조참지(兵曹參知)가 되었다.

1645년 우부승지를 거쳐 우승지(右承旨)에 오르고, 이듬해에는 다시 배천군수(白川郡守)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승문원제조(承文院提調)가 되었다. 1649년(인조 27) 대사간(大司諫)이 되어 한성판윤 이경엄(李景嚴)을 탄핵, 파직시키고, 이듬해 효종 즉위 후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제수되어 《인조실록》편찬에 수찬관(修撰官) 으로서 삼방당상(三房堂上)을 겸하였다. 1651년(효종 2) 홍문관 부제학이 되었는데, 이듬해 김자점(金自點)의 옥사 때 연루되었던 신면(申冕)의 사건으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대흥(大興)으로 유배되었고, 다시 춘천에 이배되었다가 곧 풀려나 1653년(효종 4) 전면 사유(赦宥)되어 다시 직첩(職牒)이 내려졌다.

묘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정자동 산 28-1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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