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춘필
[ 柳春泌 ]
- 요약
조선 중기의 무신. 선전관·군자감주부를 지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정유재란 때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출생-사망 | 1566 ~ 15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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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고흥 |
자 | 국향 |
호 | 단구 |
활동분야 | 정치 |
출생지 | 전북 정읍시 북면 승부리 |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국향(國響), 호는 단구(丹邱)이다. 정읍현 승부리(현 정읍시 북면 승부리)에서 출생하였다. 1585년(선조 18) 무과에 입격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고, 1591년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에 이르렀으나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유희진(柳希津 1558~1597)과 더불어 장성(長城) 남문에 설치된 의병청을 찾아가 의병 모의를 하고, 의병장 김제민(金齊閔 1527~1599)이 이끄는 의병들과 함께 직산(稷山, 천안)과 진위(振威, 평택)에서 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유희진과 함께 정읍시 북면 승부리 남나령(南羅嶺)에서 왜적과 접전하다 순절하였다. 1854년(철종 5) 정읍시 과교동에 있는 유애사(遺愛祠,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8호)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