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묘

김유묘

[ 金楺墓 ]

요약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旺谷洞)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유(金楺)의 묘.
김유 묘

김유 묘

소재지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왕림 아랫말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분묘

김유(金楺, 1653~1719)는 김징(金澄)의 둘째 아들로 자는 사직(士直)이고 호는 검재(儉齋)이다. 1674년(현종 15) 자의대비 복상문제로 박세채(朴世采)·송시열(宋時烈)이 화를 당하자 이천에 은거하였다. 이후 숙종 때 관직생활을 하여 이조참판 겸 양관대제학 등을 지냈다.

묘소에는 묘표와 상석(床石), 북석, 향로석(香爐石), 문인석(文人石), 석양, 망주석(望柱石)이 배치되어 있다. 묘표의 앞면은 한호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였으며, 뒷면에는 1753년(영조 29)에 후손인 김약로가 짓고, 김상로가 비문을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상석은 달항아리 모양의 북석으로 받치고 있으며, 향로석은 사각탁자 형태로 구름모양의 다리를 표현하였다.

문인석은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했고 얼굴이 몸에 비해 크게 만들어져 신체비례가 맞지 않는다. 망주석은 장식이 없는 단순한 형태이다. 문인석과 망주석 사이로는 석양을 배치하였는데 후대에 따로 조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신도비는 묘소 아래 약 70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방부개석(方趺蓋石) 양식으로 재질은 대리석이며, 네모난 받침돌과 뚜껑돌은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비문은 좌의정 이관명(李觀命)이 찬하고 조카인 대사헌 윤득화(尹得和)가 썼으며, 우의정 유척기(兪拓基)가 전액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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