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수만

함수만

[ 咸壽萬 ]

요약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전국에 확산되자 1930년 1월 전주신흥고등학교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체포된 뒤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였으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생-사망 1901.12.22 ~ 1930.5.19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충남 서천
주요수상 애국장(1991)

충청남도 서천 출생으로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났을 때 전주신흥고등학교에 재학중이었다. 광주항일학생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전주신흥고등학교 학생들도 개교 22주년 기념일인 12월 25일을 기하여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으나 일본 경찰의 저지로 해산되었다. 그러나 함수만은 단념하지 않고 태극기와 결의문 등을 준비하여 이듬해 1월 25일 학우 100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로 인하여 학우 24명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부상이 심하여 일단 방면되었으나 그 후유증으로 같은 해 5월 전주예수병원에서 순국하였다.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훈을 인정받아 1980년 대통령표창에 이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고, 1995년 10월 12일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묘비번호 480)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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