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희도

맹희도

[ 孟希道 ]

요약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전교령·수문전제학 등을 지냈으며,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관직에서 물러나 충청도 온양에 살면서 조선의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
출생-사망 ? ~ ?

본관은 신창(新昌), 호는 동포(東浦)이다. 군수를 지낸 맹유(孟裕)의 아들이며,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걸쳐 재상을 지낸 맹사성(孟思誠)의 아버지이다. 고려 말기에 한성윤(漢城尹)·전교부령(典校副令)·전교령(典校令)·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 등을 지냈으며, 공양왕(恭讓王) 때 정치가 혼란해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충청도 온양(溫陽)의 오봉산(五峯山) 밑에 기거하면서 조선의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

부모의 시묘살이를 하는 동안, 움집에 흰제비(또는 흰까마귀)가 둥지를 짓고 슬피 울자 부모를 여읜 슬픔에 젖은 그도 따라서 통곡을 멈추지 않아 그 효성이 널리 알려졌다고 전한다. 이에 고려 공양왕 때와 조선 태조 때 그의 효행을 기려 정려(旌閭)를 내렸다. 충청남도 아산시 법곡동에 묘가 있으며, 아산맹씨행단(牙山孟氏杏壇)의 뒤편의 세덕사(世德祠)에 아버지 맹유, 아들 맹사성의 위패와 함께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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