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오

신오

[ 申澳 ]

요약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병자호란 때 험천전투(險川戰鬪)에서 순절하였으며,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에 증직되었다.
출생-사망 ? ~ 1636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고려의 개국공신인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이다. 1620년(광해군 12) 무과에 급제한 뒤 1621년 청성(淸城)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1622년 자신이 모은 곡식 500석을 군량으로 충당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장사(壯士) 300명을 이끌고 수도인 한성에 들어와 궁성을 지켰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가 피신한 남한산성으로 진격하는 도중에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의 험천(險川)에서 청나라 군대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따르면, 당시 천총(千摠)이었던 그는 청나라의 공격으로 군대가 무너지자 늙은 나무 아래에 꼿꼿하게 선 채로 많은 오랑캐를 쏘아 죽이고는 화살이 다하여 전사하였다고 한다. 사후 주부(主簿)에 추증되었고,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율리 193번지에 있는 율리사(栗里祠)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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