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진

이안진

[ 李安眞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청양현감·한산군수·한성서윤 등을 지냈으며,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출생-사망 1575 ~ 1640
본관 덕수
보여
청호
활동분야 정치

본관은 덕수(德水), 호는 청호(淸湖), 자는 보여(葆汝)이다. 중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행(李荇)의 증손자이자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이광(李洸)의 아들로 1606년(선조 39) 진사에 합격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영창대군 옥사(獄事)와 인목대비에 대한 폐모론이 일어났을 때 감히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성균관 유생 300여 명을 이끌고 궐문에 나아가 반대하였다. 또 1618년(광해군 10)에는 조경기(趙慶起)·권념(權淰) 등과 함께 폐모론 주동자들을 참수하도록 상소하였다가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서 유적(儒籍)에서 삭제되고 귀양갔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6품직에 발탁된 뒤 청양현감(靑陽縣監)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으며, 이후 공조좌랑(工曹佐郞)·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한산군수(韓山郡守)를 거쳐 1639년(인조 17) 한성서윤(漢城庶尹)이 되었다. 행의(行義)가 올바르고 공사(公私)에 염정(廉正)하며 위엄을 갖춘 인물로서 사후에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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