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구

남인구

[ 南麟耈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능주목사(綾州牧使)·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등을 지냈으며,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출생-사망 1748 ~ 1824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인서(仁瑞)이다. 직제학공(直提學公) 남간(南簡)의 후손으로서 정조의 스승이었던 남유용(南有容)의 손자이며, 진사(進士) 남공보(南公輔)의 아들이다. 어머니 죽산이씨(竹山李氏)는 목사(牧使)를 지낸 이종해(李宗海)의 딸로서 절의를 지킨 행실로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윤상후(尹象厚)의 딸 파평윤씨와 혼인하여 춘천부사(春川府使)를 지낸 남주헌(南周獻)을 낳았다.

1779년(정조 3) 음서(蔭敍)로 벼슬길에 오른 뒤 1787년(정조 11) 비안현감(比安縣監)으로 파견되어 정사를 잘 돌보았다. 1816년(순조 16)경에는 능주목사(綾州牧使)로 부임하여 목민관의 임무를 잘 수행하였고, 이밖에 네 읍(邑)을 잘 다스린 공이 칭송되었으며, 돈녕부도정을 지내기도 하였다. 사후에 증손자인 남상길(南相吉)이 현달하여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묘가 있으며, 아들 남주헌이 지은 행장(行狀)과 참의 유한준(兪漢雋)이 지은 지(誌)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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