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순
[ 元景淳 ]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승지, 정언(正言), 수찬(修撰), 헌납(獻納), 응교(應敎) 등 홍문관과 사간원의 청직(淸職)을 두루 거쳤다. 이후 대사간,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출생-사망 | 1701 ~ 17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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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도이(道而)이다. 1701년(숙종 27) 통훈대부 원명직(元命稷)의 아들로 태어났다.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1736년(영조 1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737년부터 승지, 정언, 부교리, 경연시독관(經筵試讀官), 수찬, 헌납, 교리, 사간, 응교 등 중요한 청직을 두루 거쳤다. 1746년(영조 22) 대사간으로 승진하였고 1753년(영조 29) 양주목사,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759년(영조 35)부터 도승지, 전라도 관찰사, 강화유수, 예조판서 등 여러 벼슬을 지냈다.
1765년(영조 41) 1월에 죽었으며 영조가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여 친히 제문을 짓고 제물을 보내 제사 지내게 하였다. 시호는 정헌(正憲)이다. 묘는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장암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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