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남묘및신도비

최기남묘및신도비

[ 崔起南墓-神道碑 ]

요약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촌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최기남(崔起南)의 묘.

최기남(崔起南, 1559 ~ 1619)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병자호란 당시 주화론을 주장한 영의정 최명길(崔鳴吉)의 아버지이다. 1585년(선조 18)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1600년(선조 33)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었다. 1602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병조좌랑(兵曹左郞)에 올라 지제교(知製敎)에 선발되었다.

묘는 배위(配位) 정경부인 전주유씨(貞敬夫人 全州柳氏)와의 원형의 합장묘로 용미(龍尾)를 갖추고 있다. 봉분의 가운데 묘표(墓表),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동자석(童子石), 장명등(長明燈)이 있고 상석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망주석(望柱石), 문인석(文人石) 등의 옛 석물이 있다. 장명등은 높이 176cm에 화창(火窓)이 없으며 묘표는 비좌(碑座)·비신(碑身)·일월문(日月文)의 관석(冠石)을 갖추었고 앞뒤 양면에 비문이 있다. 묘표의 총높이는 159cm이다.

신도비(神道碑)는 묘역의 아래 있으며 비좌와 하나의 돌로 된 비신과 이수(螭首)를 갖추었다. 비좌는 대부분 땅에 묻혀있고 윗면에 복련문(覆蓮文)을 새겼다. 비문은 비신의 앞뒤에 있는데 장유(張維)가 지었고 김의신(金義信)이 썼으며 여이징(呂爾徵)이 새겼다. 추기(追記)는 아들 최명길(崔鳴吉)이 하였다. 이수 부분에는 쌍룡이 여의주를 움켜잡고 있는 모습을 새겼다. 신도비의 총높이는 183cm, 건립연대는 1654년(효종 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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