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복

천복

[ 千福 ]

요약 백제 의자왕 때의 대신이다. 660년 대좌평으로 있을 때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하자 의자왕 및 왕자들, 대신·장수들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었다.
출생-사망 ? ~ ?
별칭 정복(貞福), 사타천복(沙吒千福), 사택천복(沙宅千福)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三國史記)》에는 천복이라고 나온 반면 《(三國遺事)》에는 정복(貞福)이라고 나온다. 또한 부여정림사지5층석탑에 새겨진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에는 사타천복(沙吒千福)으로, 일본 역사서인 《니혼쇼키(日本書紀)》에는 사택천복(沙宅千福)으로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성이‘사씨(沙氏)’임을 알 수 있다.

백제 멸망 당시 대좌평의 관직에 있었다. 660년( 20)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사비성이 위험에 빠지자, 의자왕은 태자 부여 효(扶餘孝)와 함께 측근들을 데리고 웅진성(熊津城:공주)으로 도망하였다. 이에 의자왕의 셋째왕자 부여 융(扶餘隆)이 성문을 열고 항복하였는데, 이때 천복도 함께 항복하였다. 의자왕마저 웅진성에서 나와 항복함으로써 백제가 멸망한 후에 그는 의자왕 및 왕자들, 대신·장수들, 백성 1만 2000여 명과 함께 당나라로 압송되어 갔으며 그곳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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