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서익

홍서익

[ 洪瑞翼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광해군 때 분병조참의와 가평군수 등을 지냈다.
출생-사망 1572 ~ 1623
본관 남양
익지
화옹
활동분야 정치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화옹(禾翁), 자는 익지(翼之)이며, 이조판서를 지낸 홍성민(洪聖民)의 아들이다.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에 1등급인 갑과로 급제하고 조상의 훈음(薰蔭)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품계에 오른 뒤 수안군수·옥천군수·선산군수를 지냈다. 1617년(광해군 9) 분병조참의(分兵曹參議)가 되었으나 대북파의 전횡 등으로 정치가 올바로 이루어지지 않자 외직으로 나아가기를 자청하여 가평군수로 부임하였다. 1618년(광해군 18) 이이첨(李爾瞻) 등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생모인 인목대비(仁穆大妃)에 대한 폐모론(廢母論)을 제기하자 사직한 뒤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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