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혁

이보혁

[ 李普赫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이인좌의 난 때 공을 세워 분무공신과 인평군에 봉해졌고, 한성부 판윤·공조판서 등을 지냈다.
출생-사망 1684 ~ 1762
본관 용인
성원
시호 충정
활동분야 정치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원(聲遠)이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파주목사 등을 지낸 이정악(李挺岳)의 증손자이며, 영조 때 예조판서 등을 지낸 이경호(李景祜)의 아버지이다. 음서(蔭敍)로 관직에 올라 평양부윤이 되었으나 1725년(영조 1) 부정혐의로 관리명부에서 삭제되었다. 1728년 성주목사로 재임중에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함께 거병한 정희량(鄭希亮)을 토벌하는 공을 세워 분무공신(奮武功臣) 3등이 되고, 인평군(仁平君)에 봉해졌다. 이후 동의금(同義禁)·호조참판·병조참판을 거쳐 1738년 공홍도(公洪道) 관찰사를 지낼 때 법에 의하지 않고 함부로 형벌을 가한 죄로 파직되었다가 1740년 다시 등용되어 풍덕부사로 부임해서는 군액과람의 폐단을 시정하였다. 이듬해 한성부 좌윤으로 전임된 뒤 부총관을 거쳐 1753년 한성부 판윤, 1754년(영조 30) 공조판서가 되었다.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대곡리에 묘와 신도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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