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역전투

김천역전투

[ 金泉驛戰鬪 ]

요약 1592년 4월 17일 우방어사(右防禦使)로 임명된 강계부사 조경이 휘하의 청년무사 정기룡과 장지현, 장효현 등과 함께 김산 김천역에서 벌인 전투이다.

1592년 4월 14일부터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이 파죽지세로 북진해오자, 조정에서는 17일 강계부사 조경을 우방어사(右防禦使)로 임명하여 즉시 추풍령으로 떠나게 했다. 조경은 이수광을 종사관으로, 양사준을 조방장으로 삼아 관군 100여 명을 이끌고 김산 에 도착했다.

이때 진주성 훈령봉사인 30세 청년무사 정기룡이 조경 군진으로 찾아와 종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기룡의 뜻을 갸륵하게 여긴 조경은 그를 돌격장으로 임명하여 기병 10명(에는 30기로 기록)과 함께 거창 방면으로 보냈다.

4월 23일, 거창 못미처 신창에서 적의 선봉 500여 명과 맞닥뜨린 정기룡은 겁을 먹은 기병들에 앞서 돌진하여 적 10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힘을 얻은 기병들이 분발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으나, 정기룡은 잇따라 몰려오는 적군의 진로를 방해하면서 서서히 김산으로 후퇴해야 했다.

이 무렵 경상도 관찰사 김수가 지례로 피신하면서 모집한 군사 400명을 김산에 보내 조경은 500명의 군사를 거느리게 되었다. 한편 장지현, 장효현(지현의 종제)이 황간에서 군사를 이끌고 오자 조경은 그를 비장으로 삼았다.

4월 25일, 왜군 제3진이 창령에서 두 패로 나뉘어 좌종대가 무계, 성주, 개령을 거쳐 김산에 들어오게 되었다. 조경은 김천역(지금의 김천시 남산동)에서 기다렸다가 싸웠지만 조총에 놀란 군사들은 놀라 뿔뿔이 도망치고 말았다.

훗날 전쟁사가는 신창·김천역 전투가 왜군의 침범을 막고 북진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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