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

이경호

[ 李景祜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영조 때 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출생-사망 1705 ~ 1779
본관 용인
별칭 초명 경조, 자 효석
활동분야 정치

본관은 용인(龍仁), 초명은 경조(景祚), 자는 효석(孝錫)이다. 파주목사 등을 지낸 이정악(李挺岳)의 현손, 좌의정을 지낸 인평부원군(仁平府院君) 이보혁(李普赫)의 아들이며, 양명학(陽明學)의 사상적 체계를 정립한 정제두(鄭齊斗)의 문인이다. 1735년(영조 11) 생원시에 합격하여 의금부도사·지평현감·담양부사를 지낸 뒤 1753년 충주목사로 재임중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동부승지·병조참의·대사간·한성부우윤·오위부총관·공조참판·호조참판·병조참판·대사헌·예조참판 등 요직을 거쳤으며, 1762년(영조 38)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로 인양군(仁陽君) 작위를 습봉하였다.

1767년 예조판서에 특배된 데 이어 1773년에는 수어사·판의금부사에 특배되었으며, 1774년 아들 재협(在協)에 의하여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가자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778년(정조 2) 홍국영(洪國榮)의 누이 원빈 홍씨가 정조의 후궁으로 간택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결국 가례가 이루어지자 병을 이유로 가례청 당상(嘉禮廳堂上)의 자리를 체직하였으며, 같은 해 7월 명릉(明陵)의 보살핌을 게을리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대곡리에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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